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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종 절충’ 가능성 버린 트럼프

입력
2019.03.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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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외 전체 핵물질 시설로 허들 높인 미국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서로 양보 기다려

트럼프, 결국 제재 레버리지 의존 압박 선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참배하며 헌화하고 있다. 특별사진취재단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참배하며 헌화하고 있다. 특별사진취재단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더 많은 비핵화를 원했다. 돌이켜보면, 이미 예고된 요구였다. 1월 3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작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영변을 넘어’ 전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를 구두 약속했음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 말을 근거로 미국은 영변 이외의 농축 우라늄 시설을 포함하는 전체 핵물질 생산시설 폐기가 비핵화 첫 단계의 허들임을 예고한 것이다. 평양행 직전 북한에게 던진 공개적 사전 메시지였다.

지난달 6~8일 평양에서 진행된 실무협상에서 비건팀은 미국이 원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포함한 전체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기, 포괄적 신고를 포함한 비핵화 전체 로드맵의 합의문 명시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측에 북한의 비핵화 결단 여부에 따라 부분적 제재 완화 가능성도 있음을 밝혔을 것이다. 비건 대표의 표현대로 그건 ‘협상’이 아닌 입장 제시였다. 하노이 정상회담 전까지 매우 촘촘하게 실무협상이 전개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북미 양측은 예상외로 긴 공백을 가졌다. 이 공백은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빈칸’으로 남겨둔 채 서로의 결단과 절박성을 믿었던 모험적 시간이었다.

같은달 21일(현지시간)베트남 하노이에서 재개된 실무협상에선 나머지 상응조치를 합의문 형식으로 만드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미국은 자신의 비핵화 요구를 수용한다는 전제로 6ㆍ25전쟁 종전선언, 북미 연락사무소, 남북경협 일부 재개, 인도적 지원 등을 준비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서두르지 않겠다”며 합의가 미뤄질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에서 묻어났던 경직과 피로감은 남겨둔 빈칸들을 채워야 하는 초조함의 흔적이었다.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66시간의 베트남행을 택한 이유는 미국이 최대치의 비핵화 요구를 했지만, 정상회담에서는 요구치를 낮춘 합의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밝힌 ‘동시적·병행적’ 이행 방침이 북한이 주장해 온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수용한 결과라고 김 위원장은 믿었을 수 있다. 사실 ‘신뢰조성’단계에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핵실험·장거리로켓발사 영구 중단 문서 약속은 북한이 줄 수 있는 최대치다. 미국이 요구한 전체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기에서 영변 이외의 농축 우라늄 시설은 북한의 신고가 있어야 한다. 북한에게 ‘신고’는 신뢰를 전제한다. 미국이 줄 신뢰의 증표는 대북제재 일부 해제다. 따라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일부 해제 교환이라는 ‘신뢰’에 기초해 신고가 필요한 다음 단계의 비핵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전체 핵물질 생산시설 폐기와 포괄적 신고 약속 등 신뢰조성단계를 넘어서는 매우 높은 비핵화를 요구했다. 정상회담에서는 조정의 여지조차 두지 않았다. 최종 협상과 조율의 가능성은 충분했다. 전체 핵물질 생산 시설 폐기에 합의하되 두 단계로 나눠 영변을 우선하고 향후 영변 이외 시설을 진행한다는 합의다. 또한 대북제재 일부 해제 시점은 영변 시설의 불능화 이후 영변 외 시설의 신고와 동시에 둘 수도 있다. 그전까지 남북경협의 일부를 허용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조정을 하지 않았다. 최소한 실무진 사이에선 협상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젊은 지도자의 협상술에 넘어갔다는 평가를 듣기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만한 협상을 하지 않았다는 평가, 최대 압박 후 양보를 끌어내는 트럼프식 협상의 자신감,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등을 무기로 합의를 물리는 선택을 했을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초 비건 특별대표의 방북부터 이런 예정된 결렬을 예상하며 김 위원장의 결단을 압박했을 터다. 그러나 최소한 초기 신뢰조성단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로 영변 핵시설 폐기는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제재를 협상의 절대적 레버리지로 생각하는 미국의 ’두려움‘, 그 두려움을 키우는 미국의 국내 정치가 트럼프의 결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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