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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황교안 ‘기도발’이 얼마나 세길래

입력
2019.02.28 18: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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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100년 집권”에 한국당 “총선 압승”

입당 43일 黃, 친박 업고 ‘벼락당권’ 얻어

경선서 기독교 배경 지배…리더십 시험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및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및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권 재창출이 이 시대의 천명”이라며 100년 집권을 꿈꾸는 도발적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왜 하는지도 모를 뻔했다. 그가 “(망언을 일삼는 세력에 넘기느니) 우리가 부족하더라도 재집권해 새로운 100년을 열어나갈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100년에 한 번쯤 오는 기회”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당권 주자들마저 이번 전대의 의미가 뭐고 왜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다 함께 미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무덤 속 과거만 들춰내 0표니 △표니 하며 지지고 볶았으니 말이다.

이 대표의 발언에 화들짝 놀란 한국당 지도부는 “국민을 우습게 보고 시장을 괴롭히는 그들의 장기 집권은 하늘의 저주”라며 발끈했다. 하지만 이 도발로 엊그제 치른 전당대회의 본질이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하는 진지를 구축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됐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해 궤멸 상태에 이른 한국당이 비대위 체제를 가동하며 와신상담한 성과는 오롯이 내년 총선에서 평가받고 그 결과는 곧바로 대선으로 이어진다. 영광보다 상처가 더 많은 전대가 막바지에 ‘총선 압승과 정권 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전적으로 이해찬 덕이다.

문 정부와 민주당은 진작에 ‘총선 승리가 재집권의 토대’라는 판단 아래 직간접적인 선거 로드맵을 가동해 왔다. 지방균형발전을 앞세워 재정 규율을 무시한 채 24조원대의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을 강행하고, 지역을 순회하며 선심성 예산정책협의회를 여는가 하면, 세대별 직능단체를 꾸린 것 등이 대표 사례다. 이런 조치가 외연 확장을 꾀한 거라면, 사법농단 논란도 불사하는 ‘김경수 구하기’나 정치 파행을 감수하는 ‘손혜원 국조 거부’는 지지세력 결집 카드로 풀이된다. 크게 보면 모두 선거용 이벤트다.

입당 43일 만에 당권을 잡은 황교안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승리의 대장정’을 선언하고 “단상을 내려가는 순간부터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가 있어야 빛나는 달처럼, 권력 밑에서 ‘꽃가마’ 삶만 살아온 그가 단기간에 보수 정치세력의 적통을 거머쥐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의 취약성과 과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전대 과정에서 보듯 한국당은 쓰러져가는 폐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나라까지 구하려면 내부부터 손보는 게 순서다.

우선 ‘탄핵총리’라는 멍에를 뒤엎을 아무런 메시지나 스토리 없이 등장한 그에게 월계관을 안겨준 주인공은 ‘친박’으로 불리는 당심이지만 강을 건넜으면 배를 불태워야 한다. 정치판을 모르는 공안검사의 어설픈 감각으로 탄핵의 법적ㆍ역사적 성격을 부인하거나 태블릿 PC 조작 운운하는 실수는 더는 저질러선 안 된다. 그는 “정치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으로 정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정치는 대부분 힘과 결단으로 하는 것이다. 정성과 마음은 양념일 뿐이다. 그의 전투가 박근혜 망령을 씻어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보다 큰 문제는 황 대표의 리더십과 정치력이 경선 과정에서 거의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준표 전 대표 같은 ‘메기’가 빠진데다 관심과 쟁점도 대부분 과거사에 집중돼서다. 그 역시 기승전-통합만 외쳤을 뿐 새로운 정치 언어와 어법 등 준비된 리더의 모습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죽하면 통합진보당 해산과 국정농단 특검 연장 거부를 자랑했겠는가. 법무장관과 총리를 지내며 배운 정치 곁눈질은 100여명의 선출직 헌법기관을 통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황 대표가 벼락치기로 한국당 당권을 꿰차는 과정에서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게 또 있다. 전도사인 그를 따라다니는 기독교 복음주의 배경이다. 입당 회견은 물론 출마선언 정견 연설 당선 소감에 이르기까지 그는 기도하듯 간절함을 호소하며 힘을 모아달라 했다. 구당과 구국이 십자가 소명인 것처럼. 그의 기도발은 일단 통했지만 리더십이 거기서 나올 수는 없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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