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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역사 영화의 딜레마

입력
2019.02.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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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ㆍ1운동 100주년의 해이며, 임시정부 수립 역시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국영화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국가 전체가 100년이라는 세월을 기념하는 한 해인 셈이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특정 시기의 역사에 대한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년 말 개봉된 ‘말모이’에서 시작해 2월엔 ‘자전차왕 엄복동’과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관객과 만난다. 이후 ‘전투’나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영화가 이어질 예정이니, 올해 한국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가 ‘역사’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그 시절’을 그린다. 이미 285만 명의 관객과 만난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조선어학회 이야기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본인들을 꺾고 자전거로 조선의 영웅이 된 엄복동이 주인공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3ㆍ1운동 100주년에 맞춰 제작된 영화다. 3월엔 ‘1919 유관순’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예정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도 3ㆍ1운동에 대한 영화이며, ‘전투’는 봉오동 전투를 담는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크게 보면 두가지 입장이다. 먼저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영화들은 시의적절하게 역사적 소재와 대중의 만남을 주선한다. 표면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잘 몰랐던 우리의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 지녀야 할 역사 의식을 이 영화들은 고취시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입장에 서면, 이 영화들이 지닌 민족주의적 색채는 다소 위험해 보인다. 이른바 ‘국뽕’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되는, 국수주의와 집단주의가 결합된 태도에 대한 경계다.

두 입장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은 관점을 공유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자 매체이지만, 때론 그 본질적인 효용성을 넘어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기도 한다. 특히 역사와 만날 때 그렇다. 그리고 올해처럼 과거를 환기하고 기념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 시기에 등장하는 역사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만듦새를 떠나 다른 척도로 평가 받기 쉽다. 단순히 영화로서 재미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넘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재현하느냐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아직 나오지 않은 영화들이기에 왈가왈부하긴 힘들 것이며 섣부른 기대나 성급한 실망도 지금은 적절하지 않은 때다. 하지만 하나 우려되는 것은 ‘사실’의 문제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처한 제작 상황 속에서 최대한 고증에 충실하고,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 이야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왜곡의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 “영화로 역사를 배울 순 없다”는 완고한 입장도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나 드라마만큼 역사를 강렬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전하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통찰력 있는 역사 영화는 그 시대의 서사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전한다. 하지만 기본에 허술한 역사 영화는 이 모든 것에 실패한다.

대중의 서릿발 같은 ‘팩트 체크’를 거치는 것이 최근 한국의 역사 영화가 견뎌야 하는 숙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겐 견뎌야 할 시련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은혜다. 역사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전한다는 건 가장 중요한 미덕이지만, 종종 영화계는 그것을 잊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책을 있는 그대로 지루하게 옮기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펙터클이나 선악 구도 같은 진부한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요소들은 뭉개지곤 한다. 그렇다면 올해 나올 수많은 역사 영화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부디 사실의 행간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그리고 디테일과 감정과 뉘앙스가 살아 있는 영화이길 바란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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