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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 무용해 보이는 노동의 가치

입력
2019.02.08 04:40
수정
2019.02.10 10: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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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아카데미를 시작한 지 만 3년이 되었다. 개인작업만 하다가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공방에 사람이 드니 적적함이 덜하고, 힘이 되었다. 교육에 대한 경험도 없이 그저 함께 나무를 만지고 가구와 공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 열심히만 했다.

하지만 나를 통해 목수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공방을 차리고, 본인들의 가구를 들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의 작업이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직업목수를 대상으로 한 ‘전문반’을 중단하기로 결정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 부분은 내가 ‘대단히 무용해 보이는 노동이 가지는 가치’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교육 역시 공예와 마찬가지로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수료생이 차린 공방을 방문했다. 머문 지 몇 분 만에 나는 한참이나 빠른 그의 작업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목공 과정은 지극히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연결 부위가 어긋난 턱과 지워지지 않은 톱날 자국을 보고도 한마디 못한 채 공방을 나서며 나는 선생으로서의 실패를 확인했다. 그가 내게서 받아간 것은 단지 기술뿐이었다.

목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개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이란 늘 수단일 뿐 목적일 수 없다. 기술을 배우기 전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DIY 가구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면 충분하고, 짜맞춤 가구라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쓸 가구를 만들 수준의 기술은 3개월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눈이 높은 이에게 선택될 만큼 유용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가구를 만들겠다는 목적이라면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기술 역시 무용해 보이는 노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빨리 만드는 목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테이블 한 점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여일 안팎이다. 만약 어느 목수가 내게 “어휴, 20일? 나는 일주일이면 충분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가 만드는 가구를 일단 신뢰하지 않으며 그를 나보다 하수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어느 목수가 내게 “20일요? 참 빨리 만드시네요. 저는 한 달이 넘게 걸리는데...”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나보다 고수로 짐작할 것이며, 업계 경쟁자에 대한 경계심을 가득 품은 채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그가 만든 가구를 검색할 것이다. ‘무용해 보이는 노동의 힘’ 이라는 공예의 핵심에 그가 더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공예, 적어도 목공예에 있어 현묘한 기술 따위는 없다.

본질적으로 공예란 무용해 보이는 노동의 집적을 통해 이루어진다. 장인이 만든 결과물을 보며 그에게 무슨 비기가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사실 ‘더 많은 작업시간’과 ‘더 많은 정성’, 그리고 몇 가지 실수와 성취의 경험 이외에 다른 비기는 없다.

쓰윽, 톱질 한 번이면 끝날 재단에 마스킹 테이프를 한 번 더 감고, 톱날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톱질을 할 때 몸에 걸리적거릴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둘러보고, 클램프는 잘 조여졌는지 한 번 더 만져보는, 언뜻 미련하고 무용해 보이는 노동이 명품을 만들 뿐이다.

공예에 있어 기교를 배운 자 단명할 것이고, 노동의 인내를 몸에 들인 자 꾸준할 것이다. 비록 십여년에 불과하지만 내가 직업목수의 길에서 깨달은 바는 무용하고 지루한 것들을 인내해내는 것, 거기에 명품 공예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무용한 것들을 죄악시하고, 노동을 천시한다. 그런 세상에서 수십 년을 산 사람들에게 일 년 만에 무용함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설득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직 그 가치들을 살과 뼈에 새기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랴.

공예의 길은 그 두 가지를 습(習)으로 들이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을.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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