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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새로운 ‘비전 2030’이 필요하다

입력
2019.01.3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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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개발계획(UNDP) 인사를 만난 것은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의 말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UN의 예산 지원을 받아 주요 선진국으로 민간과 정부의 전문가를 대거 시찰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방문 대상 기관을 소개하고, 일정을 주선하는 일을 했던 그는 한국 사람들은 용감하다고 했다. 다른 개발도상국은 당장 현안인 농축수산업 관련 기관을 보려고 하는데, 선진 산업이나 과학기술 현장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한국 관련 일을 할 때마다 희망이 느껴진다면서 우리나라의 성공을 예견했다.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 내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지적한 미래지향적 태도였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국력을 결집하여 이를 달성했다. 미래의 시간표를 만들어놓고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던 것이다. 멀리 내다보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용기도 가질 수 있었고 농업보다는 제조업을 일구는 지혜도 낼 수 있었다.

5차 때 명칭이 바뀐 뒤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은 1992년 7차 계획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실효성 있는 계획을 짜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경제가 자리 잡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계획을 핑계로 간섭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과거와 같은 형태는 아닐지라도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나침반이나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는 미래 비전이나 계획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 많은 선진국은 중ㆍ장기 시계를 가진 미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 호주, 스웨덴, 핀란드 등이 고령화, 세계화 등 메가트렌드에 대응하는 정부 차원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참작해 만들었던 것이 참여정부 말기의 ‘비전 2030’이다. 청와대가 주도해서 ‘2010년대 선진국 진입, 2020년대 세계 일류 국가 도약, 2030년대 삶의 질 세계 10위’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정책수단을 내세웠다.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 세금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는 매서운 비판으로 빛이 바랬다. 보고서의 폐기를 주도했던 보수세력은 정권을 잡은 후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맞춤형 보육 등을 패키지에서 꺼내 실현시켰다. 비전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로제, 탈원전 등 선거공약을 실천에 옮겼지만 구조 변화에 대한 희망보다 갈등과 논쟁을 양산하고 있다. 경기침체를 걱정하지만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계속 힘이 빠질 앞날이 실은 더 두렵다. 저출산 고령화가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성장잠재력이 우리도 모르는 새 빠르게 부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나 규제 개혁이 시급한 과제라고 하면서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희망적이긴 한데 불안하고 걱정 또한 많다.

이런 구조적 이슈들을 아우르면서 남은 기간에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조금 더 긴 시계에서 내다보고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집권 3년 차라고 하나 이제 탐색을 마쳤을 뿐이다. 새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을 긴 시야에서 재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방향 수정이나 보완을 하는 데는 지금이 최적기다. 이 작업은 정책 주체인 정부가 적극 나설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인데 장기 비전 타령이냐고 할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미래 비전 없이 임기응변이나 신념만으로 대응하다 보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마냥 표류할 수 있다.

미래가 예정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좋은 미래는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원하는 경제를 장기적 시야에서 구체화해보고 방법을 찾을 때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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