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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고무총 사냥

입력
2019.01.1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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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엄마 오리,/못물 위에 둥둥.//동동 아기 오리,/엄마 따라 동동.//풍덩 엄마 오리,/못물 속에 풍덩.//퐁당 아기 오리,/엄마 따라 퐁당.” 동요로도 유명한 이 동시 ‘오리’를 쓴 시인이 바로 권태응(1918~1951)이다. 대표작 ‘감자꽃’, ‘땅감나무’의 빼어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선집 ‘감자꽃’(창비)으로 아쉽게나마 만나온 권태응 작품의 전모를 최근 출간된 ‘권태응 전집’으로 온전히 받아 안게 됐다. 1947년부터 1950년 작고 직전까지 시인이 묶은 육필 동시집 9권 400여 편이 소설, 수필, 희곡 등 산문과 함께 이제야 발간된 것. 미발표 육필 동시집의 존재는 25년여 전부터 이미 알려졌으나 일부 연구자가 소장해오다 권태응 탄생 100주년이 되는 지난 해 비로소 널리 세상에 나왔다.

‘고무총 사냥’은 ‘감자꽃’에 실리지 않았지만 권태응 동시 연구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이오덕, 소년한길, 2001)에 인용된 걸 읽고 좋아했던 작품이다. 비로소 시집에 실려 이제 보다 많은 이들이 읽을 생각을 하니 전집 출간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고 반갑다.

권태응 동시는 대구와 반복의 정형률을 뛰어나게 보여주듯 ‘고무총 사냥’에서도 1, 2행의 반복과 3, 4행의 변화로 의미가 생성, 확장된다. 고무총 하나 달랑 갖고 동산으로 달려 간 아이는 새를 잡지는 못했지만 대신 다른 걸 발견한다. 숲의 고요, 새들의 지저귐과 아름다움, 침입자인 자신…… 새를 해칠 태세를 못하는 아이는 숲을 헤매며 넋을 잃고 새를 바라보다가, 오히려 새에게 놀라다가, 결국 동산 ‘꼭대’에 오른다. 고무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꼭대’에 다다른 건 사냥의 발자국이 실패로 끝나버린 게 아니다. 아이는 진정 새를 발견하고 새와 만났기에 ‘꼭대’에서 펼쳐지는 너른 하늘과 두 발 아래 원경이 자유롭고 후련하다.

육필 동시집 9권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격동기와 아울러 폐결핵 3기의 병고 중에 만들고, 보듬고, 지킨 것이었다. 1950년 7월에 엮은 원고의 후기에서 시인은 “피란으로 인하여 내 병체(病體)는 엉망진창”이라고 자탄하면서도 “보담 값있는 것/보담 높다란 것/보담 아름다운 것/보담 빛나는 것”을 창작하려는 의지를 가다듬는다. “피어리고 눈물겨운 ‘민족 여명의 날’을 구가하면서 내 작품 생활에 좀 더 깊이 있는 그 무엇을 탐색해보자.”는 시인의 시대 의식과 작가적 소명은 전집에 실린 400여 편의 동시에 오롯이 드러난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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