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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위기 앞에서 자기방어적인 청와대

입력
2019.01.0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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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가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해도 

 복합적 위기 관리 역시 정치적 능력 

 靑의 자기만족이 자기방어로 이어져 

지난해 12월 장하준 교수가 “한국경제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라고 말했는데, 그 인터뷰를 실은 매체가 마침 조선일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가 위기론을 확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기론도 정부에 대한 보수의 정치적 공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이처럼 위기론은 정치적 진영 논리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긴 어렵다. 그러나 위기론이 단순히 보수의 정치적 프레임일까?

청와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최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우리 경제가 4~5% 성장률을 보이지 못한다고 위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경제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현재 위기론의 핵심은 단순히 높은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지는 않다. 그는 또 “경제가 망가질 듯한 ‘위기론’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도 핵심을 벗어난다. 위기가 거론되는 이유는 그냥 경제가 망가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스템의 위험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위기론이 개혁에 반대하는 프레임이라며, 거꾸로 프레임을 짠다. 그는 작년 11월에 한 토론회에서 “위기론이 반복되고 있다.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다. 보수만 위기를 거론하는가? 결코 아니다. 재벌개혁을 비롯한 여러 정책이 우경화한다며 개혁이 위기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좌파 그룹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도 자기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근 여당 지도부를 초청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2018년에 ‘소비는 좋았다’며 경제성과를 변호하였다. 여러 지표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과 성장을 포괄해서 보면,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의 경직성과 정부의 둔한 대응 방식을 보면, ‘소비는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위기에 대해 이렇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을까? 경기침체가 글로벌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현 정부가 고용과 성장의 저조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단순히 일부 경제 지표가 나쁘다고 위기를 거론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보수가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에 반대하기는 하지만, 정작 위기의 핵심은 일부 정책이나 부분적 지표에 대한 판단을 넘어선다.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의 후진성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와 다른 정부라고 하면서도 충분히 차이를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또 경제뿐 아니라 전체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개혁이 필요한데도, 정부는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은 필요하면 지지층과 싸웠지만, 문재인은 그렇게도 못한다는 비판도 결코 가볍지 않다. 더 이상 보수 탓을 할 수도 없다. 협치나 연대를 통해 개혁을 일궈내는 것이 정치적 실력 아닌가.

위기에 대한 청와대의 자기 방어적인 태도는 문제다. 위기론이 정치적 공세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고 해도, 위기론을 전적으로 정치적 프레임이라고만 치부하는 자기 방어적 태도는 단견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무엇보다 청와대의 자기만족적인 태도와 꽉 맞물려 있다. 자기만족적인 태도는 쓴소리나 생산적 비판을 비난으로 여기기에 쉽게 자기 방어적 태도로 바뀐다. 일반적으로 쓴소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 조직은 생존하기 어렵다.

특히 위기가 없다고 자기 방어를 하는 태도는 이중으로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현재 사회에서 위험(리스크)은 과거와 달리 단순히 변수가 아니라 항수이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들이 공황에 빠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대기업도 5년을 내다보기 어렵고, 교육 및 취업 경쟁 풍경은 잔혹하고 처참하다. 편협한 진영논리를 넘어서서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까닭이다. 위기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기가 없다며 웃는 정부도 믿음을 주기 어렵다. 크고 복잡한 위기가 있다. 그걸 관리할 전략을 세우는 것이 정치적 과제이자 능력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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