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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탄스런 김정은 신년사

입력
2019.01.05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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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는 그야말로 적반하장, 아전인수격이다. 김정은은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의미 분석에 분주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와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 인과관계를 철저히 무시하고 비핵화 협상과 남북 경협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기세를 보여 준 신년사였다.

북한의 요구 사항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다. 내용인즉 우리와 미국의 결자해지를 요구한 것이다. 일방적이다 못해 도를 넘었다. 김정은은 우리에 군사적 요구부터 해 왔다. ‘외세’와의 군사훈련 중단과 ‘외세’로부터의 전략자산을 포함한 전쟁 장비 반입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지난 9월의 남북 군사합의서의 범위를 넘은 추가 요구다. 군사합의서에는 무기 도입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군사훈련 중단도 군사분계선 일대로 제한했다. 자칭 ‘핵보유국’이 무엇이 두려워 우리의 의사 결정 자주권과 국방 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인지 저의가 궁금해진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 문제에 대해 그는 ‘무조건적이고 대가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개 용의의 유무 문제를 떠나 두 사안이 북한의 도발로 중단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방증이다. 아니 원죄를 망각한 채 시간이 지났고 관계가 좋아졌으니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식의 논리다. 반성과 사죄나 재발 방지 확약이 부존한 상황에서 설득력이 없다.

미국에는 성의를 보였으니 결단을 내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가 보였다는 성의는 그만의 망상이다. 세상은 북한이 성의 표시했다고 동의하지 않는다. 비핵화 의지가 선대의 유훈이 확실하다면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에 대한 검증 사찰을 왜 수용하지 못하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비핵화 담판 용의가 있으면 왜 검증을 두려워하고 비협조적인가. 협상과 담판은 오고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일방적 요구는 진전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 같은 요구를 하면서 수용불가 시에 대비한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협박의 메시지는 국내외의 이목을 끈 ‘새로운 길’이라는 대안이다. 그는 국가의 자주권과 최고의 국익 수호,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새로운 길의 모색을 정당화했다. 이런 선택의 불가피성을 미국의 약속 불이행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그는 미국의 강요와 제재 및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임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길’의 의미는 무엇일까.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맥상에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정황에 대입해 풀이해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은 ‘벼랑끝 외교’ 전술이나 군사적 도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다. 이의 진정한 의미를 ‘새로운 길’을 언급한 이후 두 번째 단락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자주, 평화, 친선의 리념에 따라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계속 강화하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문단에서 그 의미가 암시돼 있다.

사회주의 나라는 중국이다.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는 러시아다. 여기에 현 정부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우리 정부에 대한 인식은 요구 사항을 보면 부정적이다. 미국도 호감은 생겼지만 그의 요구 조건을 보면 우호적인 상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새로운 길은 중국과 러시아와 공조하며 미국에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김정은의 방중 이후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비핵화’에서 ‘쌍궤병행’으로 입장을 전환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배후설을 공개 비판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책임 전가를 위한 연막 전술에 현혹되지 않고 현실적인 대북 접근이 필요한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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