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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당신에게 더 작은 새해목표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19.01.0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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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으로 막 접어든 지금, 한해 중 상담 요청이 가장 적을 때다. 이 시기에 우리 상담소 사람들은 겨울잠 자듯 푹 쉰다. 외부 상담을 하지 않은 채, 구성원들끼리 서로 간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곧 다가올 상담 러시를 대비해, 소진을 방지하려면 지금 충분히 쉬어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차디찬 겨울에 마음도 부쩍 얼어붙을 텐데, 왜 상담이 줄어드냐고 누군가 물었다. 이 시기엔 다들 새해 소망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토익스피킹 성적 올리기, 아침 수영 가기, 공모전 꼭 수상하기, 올해는 반드시 퇴사하고 창업 도전해보기, 엄마ㆍ아빠 몰래 반수 성공하기 같은 성취를 위한 목표부터, 휴학하고 세계 일주 가기, 호주 워킹홀리데이 다녀오기 같은 또 다른 세계로 나가기 위한 목표들까지. 형태는 다양하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어쩌면 올해는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일 년 중 가장 굳센 시기이기에 고민을 털어놓으러 오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4, 5월경이 되면 상술한 목표들이 핵심 문제가 되어 상담이 줄을 잇는다. 한해가 다 간 11월, 12월이 아니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왜 벌써 고민을 하는 걸까?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남은 기간이라고 잘할까? 나는 왜 이 모양이지? 결국 안 될 거야.’ 라는 게 핵심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던 아침 수영은 빼 먹은 지 오래고, 토익 학원은 등록했지만, 이것들을 하느라 다른 걸 놓치면 어쩌나 싶다. 워킹홀리데이는 선발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진작에 목표실패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내가 여기 매달리는 사이 친구들은 기업 최종면접만을 남겨두었단다. 나를 성장시키려 만든 신년 목표들은 금세 변이되어 자책의 도구로 바뀌고 만다. 상담 글은 대체로 ‘사라지고 싶어요.’ ‘다 놓아버리고 싶어요.’ ‘제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며 끝을 맺는다.

누군가 느끼기엔 너무 비약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모전상 못 탔다고, 사라지고 싶다니. 겨우 4월인데 남은 8달을 노력할 생각을 해야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나약한가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극적인 표현 강도보다 그 안의 이유다. ‘고작 이것도 못 하는데 문장이 핵심이다. 즉, 작은 목표를 이루지 조차 못한 나이기에, 더 큰 크기는 당연히 이룰 수 없다. 지금의 것들은 내 미래 전체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믿는 심리가 드러난다. 당연히 사실이 아닌데도 왜 그럴까?

참 공감하는 표현이 있다. ‘이전세대의 경쟁은 출세를 위한 경쟁이라면, 현세대의 경쟁은 공포감에 의한 경쟁이다.’ 이범 교육평론가의 말이다. 두려움이 청년을 열심히 살게 한다. 자수성가를 위해서,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낭떠러지로는 안 떨어지는 정도의 삶. 그 하나를 위해서 들여야 할 노력과 고충만으로도 너무 벅찬 시대다. 그러니 작은 실패 하나만으로도 점차 한발, 한발 낭떠러지로 밀리는 것 같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고야 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올해의 계획은 조금 다르게 세웠다. 하루에 딱 한 페이지 책 읽기,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참지 말고 먹기. 자전거 5분만 타기 등이다. 어지간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새해 목표들. 적어도 ‘이것도 못 하니 내 인생은 망할 거야’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목표들로만 채웠다. 잊지 말자. 이미 우리는 용쓰며 산다. 어차피 목표를 세우든 세우지 않든 공시를 준비할 것이고, 토익을 준비할 것이다. 굳이 종이에 쓰고 붙여, 우리를 옥죄는 또 하나의 마음 감옥으로 만들기보다, 당연히 달성할 수밖에 없는 사소한 목표들이 북돋워 주는 자존감의 기제로 삼는 것이 낫지는 않을까?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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