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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구설에 오른 장애인부모연대… “발달장애 정책에 제동 걸려선 안돼요”

입력
2019.01.01 04:40
수정
2019.01.01 12: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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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발달장애아 부모 단체의 사회운동

투쟁하는 발달장애 엄마들도 평범한 엄마들일 뿐이다. 삽화 신동준 기자
투쟁하는 발달장애 엄마들도 평범한 엄마들일 뿐이다. 삽화 신동준 기자

‘장애인 예산 70억원 몰아주는 곳에 비리’ ‘장애인 무차별 폭행한 복지시설… 매트리스엔 핏자국’

장애계에 최근 충격적 뉴스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이기사들이 겨냥한 곳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라는 단체다. 2017년 가을,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모여 불고기를 먹다가 얼떨결에 가입신청서를 쓴 뒤 매달 1만원씩 후원금을 내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비리가 발생하고, 관리하는 곳에서 폭행이 일어났다니…

일단 이번 보도나 사건 자체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자 한다. 세부 내용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진상을 파헤치는 건 경찰과 진상조사위원회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혹시나 이번 기사로 인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모인 단체나 구성원들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생기지는 않을지 우려되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연대라 하면 머리를 삭발한 과격한 엄마들이 투쟁을 외치는 무서운 조직으로만 알았다. 장애인 자식을 출산하기 전까지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 6년 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나는 매일 출퇴근 길마다 국회 정문 앞에 서 있는 1인 시위자를 보곤 했다. 가끔은 국회 맞은편에 단체들이 몰려와 확성기로 소리를 질러가며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은 부끄럽지만 당시 나에게 그들의 외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나에겐 1인 시위를 하는 누군가가 어떤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는지보다 오늘 점심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가 더 중요했다. 나만 그랬을까? 국회 기자실에서 함께 일하던 타 매체 정치부 기자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던 국회의원과 당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 1인 시위자의 앞을 지나던 우리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웃고 있었고, 1인 시위자는 그런 우리를 그저 바라보았다. 우리 중 누구도 그에게,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그런 경험이 누적돼 있었기에 나는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정책 변화를 꾀한다는 부모연대의 방침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위한 대규모 삭발식이 청와대 앞에서 치러졌다. 장애인판에 들어와 알게 된 엄마와 아빠들이 삭발을 자처했고, 나 역시 발달장애 아이의 엄마로서 ‘국가책임제’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생애 첫 ‘투쟁의 현장’에 참가를 하게 됐다.무대 위 누군가의 호령에 따라 주먹 쥔 한팔을 들고 “투쟁!”이라 외치는 데 웃음이 났다. 주먹을 쥔 팔을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어색했다.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데 가사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삭발식이 시작됐다.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 현장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러다 그전까진 아무 말도 없었던 지인 한 명을 그 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평소 발랄하고 유쾌하기만 한 그였는데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지하고 엄중하고 깊고도 슬픈 눈빛. 생전 처음 보는 그의 눈빛에 나는 압도당해 버렸다. 정녕 내가 아는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을 뿐.

그리고 또 한 명, 하루에도 몇 번씩 경기를 일으키는 자식을 보면서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식을 책임져 줄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내 건 이를 보았다. 지방에서부터 올라오느라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였을 그는 눈이 마주치자 해맑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나도 함께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야 하는데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왈칵 나오려 했다. 이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분노가 솟아올랐다.

저들은 왜 저기에서 머리를 밀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왜 그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지, 대체 우리는 왜 담장 밖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식이 장애인인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왜 우리는 담장 밖의 사람들이 되어 담장 안의 누군가에게 읍소를 해야만 하는가. 우리에겐 가족의 생사가 달린 절박함이지만 누군가에겐 오늘의 점심 메뉴보다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절망은 더 깊었다.

머리를 삭발한 엄마들은 무섭고 과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나처럼 웃고, 나처럼 발랄하고, 나처럼 장애 아이를 키울 뿐인 단지 ‘엄마’들일 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후에 남겨질 자식을 위해 기꺼이 머리카락을 내어주고 기꺼이 투쟁이라 외치는 그냥 엄마와 아빠일 뿐이었다.

이번에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뉴스를 연이어 내보낸 방송사 기자의 첫 마디는 “발달장애인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무릎 꿇고 읍소한 부모님들 기억하실 겁니다. 이 부모님들이 속한 단체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인데요”라는 멘트였다.

강서 지역 특수학교 사태가 벌어졌을 때 무릎을 꿇고 울던 엄마들을 안다. 당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는 분노에 떨며 그들에게 화까지 냈다. 무릎을 왜 꿇었냐고, 차라리 맞서서 싸움이라도 하지 왜 무릎을 꿇었냐고. 나는 화가 나서 눈물을 찔끔 흘리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학교가…”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고, 슬프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무릎을 꿇었던 엄마들마저 ‘비리’니 ‘폭행’이니 하는 뉴스를 부각하는데 끌어다 쓰이고 있었다.

무릎 꿇은 그들이 비리와 무슨 상관이라고. 머리를 삭발한 그들이 폭행과 무슨 상관이라고. 부모연대에 소속된 대부분의 부모는 단지 장애 아이를, 성인 장애인을 키우는 보통의 엄마와 아빠들일 뿐인데. 그런 우리들이 이번 비리나 폭행과 무슨 상관이라고.

우려하는 게 이 부분이다. 이번 보도로 인해 혹시나 부모연대라는 단체가 비리 단체로 낙인찍히는 것, 그 안에 소속된 부모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 더 나아가 이제 막 뭔가 시작되려고 하는 발달장애 관련 정책과 지원의 흐름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것, 이런 기류가 형성될까봐 나는 두렵다.

비리 보도가 나간 다음날 부모연대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진행하던 ‘피플퍼스트’ 사업이 재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피플퍼스트’란 성인이 된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자조모임을 꾸리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다. 내 아들의 미래 모습이기도 할 성인 장애인들이 하루아침에 떨어진 날벼락에 엉엉 울며 사무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난 12월 26일에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뉴딜 일자리 사업 중 마포구청에 발달장애 전담 인력(부모연대 부모 대상)을 배치하기로 했던 일이 무산됐다.

두 개 사안 모두 ‘오비이락(烏飛梨落)’ 같은 일일 수도 있다. 심사기준에 못 미쳐서, 어떤 자격이 안 돼서 정당히 탈락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

비리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비리가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모들이 모인 목적은 부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다. 그게 유일한 명분이다.

관리의 책임도 마땅히 져야 한다. 발달장애인평생센터는 성인기에 갈 데 없는 우리 자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부모가 총책임자다. 그런 곳에서폭행이 일어났다니, 외부에서의 폭행보다 더 아프다. 마음이 찢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해서 부모연대 전체가 비리 단체로 낙인찍히거나 앞으로의 발달장애 관련 정책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왜 발달장애인 연대가 아니라 부모연대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발달장애’라는 장애의 특성상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당사자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의 복지와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하니, 보다 못한 부모들이 나서서 하나하나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부모들의 투쟁 역사가 대한민국 발달장애 발전의 역사였다.

부모연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막 출발점에 선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은? 그 또한 부모연대의 동력으로 일궈낸 성과인데 앞으로 이 모든 건 어떻게 되는 걸까. 참담하고 슬픈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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