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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겼지만 이겼다”… 12ㆍ15 하노이 대격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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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겼지만 이겼다”… 12ㆍ15 하노이 대격전 예고

입력
2018.12.12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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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거리 응원전에 나선 한 청년이 2대 1로 전반 경기가 끝나자 박항서 감독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인파 사이를 누비고 있다.
11일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거리 응원전에 나선 한 청년이 2대 1로 전반 경기가 끝나자 박항서 감독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인파 사이를 누비고 있다.

“원정경기에서 비긴 거면, 이긴 게임이다. 15일 하노이서 보자.”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스즈키컵 결승 1차전 원정경기에서 말레이시아와 무승부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시민들 “이긴 경기나 마찬가지”라며 박 감독과 선수들에게 높은 신뢰를 보였다. 15일 하노이 미딘 경기장에서 열릴 2차전에서의 우승 기대감은 그만큼 더 높아지게 됐다.

시민들은 11일 오후 경제수도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광장(거리) 일찌감치 모여들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응원객들은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는 물론 국기가 그려진 붉은 티셔츠를 입고 얼굴엔 국기 스티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응원전에 나섰다.

전반 20분까지 베트남 선수들의 이렇다 할 유효 슈팅 없이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21분에 반전했다. 후이 헝 선수가 쏜 골이 말레이시아 선수 몸에 맞고 골로 이어지자 광장은 순식간에 열광에 휩싸였다. 요란한 부부젤라 소리와 함성이 함께 터져나오며 현장의 흥분은 몇 분이 지나도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6개의 대형 스크린 앞에는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이들은 하나가 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했다. 말레이시아 선수들의 다소 거친 태클이 나오면 곳곳에서 야유가 나왔고, 실패한 공격 시도에도 큰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팜 덕 후이 선수가 찬 공이 득점으로 이어지자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일어나 기뻐하고 있다.
팜 덕 후이 선수가 찬 공이 득점으로 이어지자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일어나 기뻐하고 있다.

전반 22분 박항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손을 뻗어 지시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자 수만 관중들 사이서는 함성이 쏟아졌다.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4강이라는 성적으로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쓰면서 붙은 ‘국민영웅’이 어색하지 않았다. 더러는 ‘박항서’ ‘박항서’를 연호하기도 했고, 박 감독 얼굴인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흔드는 청년도 보였다.

이어 전반 25분 팜 덕 후이 선수의 발에서 떠난 공이 말레이시아 골망을 흔들자 광장은 이들은 괴성과 함께 스프링 튀어 오르듯 일어나 손에 든 것들을 흔드는가 하면 옆 사람들을 얼싸안았다. 광장은 그야말로 떠나가는 듯 했다. 행사장 통제를 맡은 한 공안은 “이 광장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 묻는 질문엔 손을 저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몰린 적이 없었기에 그 규모를 가늠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응우옌 후에 거리는 지난 2015년,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을 벤치마킹해 조성됐다.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시청) 청사 정면에 위치한 폭 30m, 길이 700m의 공간이다. 편하게 걸으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어 필수 관광 코스로, 올 초부터는 축구 응원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응우옌 후에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를 찾은 손님들의 시선도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고정됐다.
응우옌 후에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를 찾은 손님들의 시선도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고정됐다.

2골이 터진 뒤 베트남 선수들의 경기력이 압도적으로 향상된 게 온 화면으로 감지됐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 팀에 불어 넣은 공수 균형과 압박 전술이 전반 중반 이후 이어졌다. 붉은 유니폼 선수의 드리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 광장의 막대 응원 풍선은 선수의 뜀박질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해가 지면서 기온은 30도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들이 뿜는 열기는 체감온도를 밀어 올렸다.

경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전반 36분 말레이시아의 추격골이 터지자 광장은 순식간에 식었지만, 베트남 선수들이 슛을 할 때마다 광장은 북한의 카드섹션 공연 장면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여자친구와 함께 찾은 덕 남(24)씨는 “우리의 응원이 말레이시아에 있는 우리 선수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골을 내준 뒤 2대 1로 전반전이 종료되자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1시간 가까이 바닥에 앉아 숨죽이며, 손에 땀을 쥐며 응원했던 터다. 이들이 일제히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자 일대 통신은 일순 마비 현상까지 보이기도 했다. 홍앙 피(26)씨는 “6명의 가족들과 함께 왔지만 응원을 하다 보니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며 “전화가 안돼 찾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 인스턴트 라면 업체는 수 많은 관중 사이를 휘저으며 자사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등 홍보장으로 적극 활용했고, 한 은행에서는 대출 상품 광고지와 함께 녹색 막대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붉은 물결 속에 녹색 풍선은 눈에 띄었지만, 동시에 거슬렸다.

응우옌 후에 관장 응원 풍경
응우옌 후에 관장 응원 풍경

후반 경기가 시작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점골이 터졌다. 광장은 이내 싸늘하게 식었다. 이러다가 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베트남 선수들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부부젤라 소리를 키웠고, 응원 분위기는 이내 되살아났다. 호앙 덕 남(24)씨는 “원정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지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비에 치중하는 듯하던 베트남 팀은 간간히 송곳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결정력 부족이 발목을 잡으며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 때마다 수만 관중의 광장에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2대 2 동점 상황에서 35분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경기를 끌고 간 베트남 팀은 결국 추가 골을 만들지 못하고 경기가 종료됐다. 특히 후반전 추가 시간, 말레이시아가 페널티 라인 근처에서 마지막 프리킥 기회를 얻자 광장 곳곳에서 시민들은 두 손을 모으고 무승부를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베트남 골키퍼의 선방으로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된 뒤 이들의 표정엔 베트남 특유의 여유가 넘쳤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내 흩어져 없어지는가 싶던 이들은 인근 주차장에서 오토바이를 찾은 뒤 일제히 다시 거리로 다시 쏟아져 들었다. 부부젤라를 불고, 경적을 울리는 것은 물론 브레이크를 잡은 채 액셀레이터를 돌리는 등 만들어 낼 수 있는 굉음이라는 굉음은 다 만들어 냈다. 이들은 밤 12시가 다 되도록 응우옌 후에 거리, 인근의 동커이, 레주언 거리를 누볐다. 내일 출근도, 등교도 잊은 듯 했다. 이들은 2차 결승전이 열리는 오는 15일 주말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11일 오후 경기가 시작되기 전 호찌민시 여행자의 거리인 부이비엔 거리 노상 카페도 축구 경기를 보려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11일 오후 경기가 시작되기 전 호찌민시 여행자의 거리인 부이비엔 거리 노상 카페도 축구 경기를 보려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라면 먹고 응원하세요”
”라면 먹고 응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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