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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주고 뺨 맞은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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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주고 뺨 맞은 원희룡

입력
2018.12.07 14:58
수정
2018.12.07 23: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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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오후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오후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외국인만을 진료하는 조건으로 개설 허가를 내줬지만, 정작 병원측은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녹지병원은 이같은 입장을 지난 2월에도 도에 전달했음에도 조건부로 허가가 이뤄진 것에 항의하면서 소송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도는 뒤늦게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도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녹지병원 개설 허가 기자회견 직후인 지난 5일 오후 녹지병원 사업자인 제주녹지제주헬스케어 유한회사가 개설 허가와 관련해 공문을 보내왔다고 7일 밝혔다. 해당 공문에는 진료 대상을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극도의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담아 “도의 행정처분에 대해 법률절차에 따른 대응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소송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앞서 녹지병원은 10개월 전인 지난 2월 12일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도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병원측은 공문을 통해 “외국인 전용 또는 내국인 이용제한 조건 허가는 근거가 없거나 오히려 관련 규정 위반으로 보인다”며 “외국인 투자자 신뢰보호와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외국인 전용이 아닌 제대로 된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처럼 녹지병원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도가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소송전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영리병원 허가를 놓고 전국적인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허가 조건으로 내건 ‘내국인 진료 금지’ 방침의 현실성과 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 취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 취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실제 소송전으로 이어지더라도 도가 승소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는 내국인 진료 금지에 대한 근거로 “제주도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제한한 경우, 의료기관 입장에서 허가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는 것은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의료영리화 저지제주본부)는 이날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영리병원 개설 허가의 근거가 되는 ‘제주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에는 외국인만 대상으로 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제주특별법에는 ‘외국의료기관과 외국인전용약국에 대해 이 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해서는 의료법과 약사법을 준용한다’고 명시돼 있고, 의료법 제15조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어 사실상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도 앞서 지난 6일 원 지사와의 면담 후 “만일 한국 국적자가 녹지국제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다가 거부당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원이 의료법을 적용해 위법 판단을 내린다면 진료 대상이 내국인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도는 2015년 발행한 ‘외국인의료기관 똑바로 알기’ 홍보자료를 통해 ‘내국인(도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수차례 영리병원에서의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점도 소송에서 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 지사가 지난 5일 녹지병원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발표하면서 “내국인의 이용을 엄격히 금지해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소송이 이뤄질 경우 결과에 따라 이같은 발언은 공염불이 되는 것은 물론 공공의료체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자 도는 이날 “필요하다면 제주특별법에 내국인 진료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녹지병원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적극 대응하는 한편 개설 허가 취지 및 목적 위반 시 허가 취소도 불사하는 등 내국인 진료 금지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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