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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부시, 아들 대통령을 ‘작은 덤불’로 만든 미국 정치의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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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부시, 아들 대통령을 ‘작은 덤불’로 만든 미국 정치의 거목

입력
2018.12.01 16:52
수정
2018.12.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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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왼쪽) 전 대통령과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2013년 4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기념관 헌정식에서 나란히 앉아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지 H. W. 부시(왼쪽) 전 대통령과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2013년 4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기념관 헌정식에서 나란히 앉아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인들은 제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슈러브’(Shrub)라고 부른다. 슈러브는 ‘작은 덤불’이라는 뜻이다. 제41대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H. 부시가 이미 부시(Bushㆍ큰 덤불)라는 별명을 차지한 탓에 그 아들은 작은 덤불이 된 것이다.

미국인들이 ‘작은 덤불’, ‘큰 덤불’로 대통령 별명을 부르게 만들었던 최초의 인물인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타계했다. 그와 70년 넘게 해로했던 부인 바바라 부시 여사가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지 7개월만이다.

작고한 전 부시 대통령은 연임에 실패한 몇 안 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동서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큰 인물이다. 그의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이어 받아 구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과 1989년 지중해의 몰타에서 냉전 종식과 새로운 협력을 선언했다.

1924년 6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난 부시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에서 해군 조종사로 일본군과 맞섰다. 1965년 석유사업을 맬컴 글레이저에 매각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66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년 뒤 재선에 성공한 부시 전 대통령은 그러나 1970년 민주당 로이드 벤슨 후보에게 패하며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1970년대 미 중앙정보부(CIA) 부장을 역임하는 등 여려 정부 부처에서 일했다. 부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1970년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 임명됐으며 이후 3년간 미국대사 직책을 유지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며 중국 인맥을 쌓았다. 1977년에는 CIA 국장 자리에 올랐다.

1968년 장남과 조지 H. 부시 AP 연합뉴스
1968년 장남과 조지 H. 부시 AP 연합뉴스

198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후보에게 패했다. 레이건 후보 요청으로 부통령 후보를 맡아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후 레이건의 도움으로 198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꺾고 제 4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은 군사적 영광으로 가득했다. 파나마와 이라크에 군대를 동원해 성공을 거뒀다. 1989년 12월 파나마에서 마약 퇴치를 위해 파견된 미군 해군 장교가 파나마 군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부시는 이를 빌미로 미군 병력 2만 여명을 투입해 파나마를 침공했다. 마누엘 노리에가 전 파나마 대통령을 붙잡아 미국으로 압송했다.

현재의 중동 정세 토대가 된 중동전쟁도 그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다국적군을 주도해 이라크 군을 격퇴했다. 다국적군은 이라크를 공격한지 1개월 만에 승리를 거뒀다. 이 당시 부시 전 대통령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 1992년 재선에 도전했지만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에 패배했다. 이후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

부시는 연임에는 실패했지만, 정직한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다. 재임 중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재정적자를 타개할 목적으로 세금 인상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 공로로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부시 가문’을 케네디 가문에 맞먹는 미국 명문 가문으로 만들었다. 아들 부시와 함께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에 이은 미국 역사상 2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다.

2016년 대선 경선에서는 초반 그의 차남 젭 부시가 도전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밀려 미국 역사상 최초의 3부자 대통령 탄생은 실패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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