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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갈등사회와 해결의 조건

입력
2018.11.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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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과거는 독재에 대한 자유의 투쟁이었지만 지금은 개인간 권리투쟁의 시대이다. 최근 갈등이 부쩍 늘었다. 최저임금제, 탄력근로제, 공유경제, 에너지, 폐기물매립지 등 이슈도 다양하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그 사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방치할 경우 이익갈등을 넘어 가치분열로 이행한다. 이익은 분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가치의 분열은 이익이 충족되어도 지속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미운 녀석은 계속 미운 경우이다.

갈등은 국가, 기업 등을 막론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그 정도가 높아진다. 어려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안하다보니 갈등의 수위를 높이더라도 지금 확실히 주도권을 잡거나 약속을 받아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에 신뢰부재를 경험했을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신뢰가 약한 우리 사회는 갈등이 증폭되기 좋은 조건이다.

법을 만들어 갈등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있다. 게임의 규칙을 정한다는 점에서 법은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라는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담을 합의라는 음식이다.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법은 형식에 불과하고 억압을 통해 더 큰 갈등을 불러온다.

갈등해결의 시작은 의견을 묻는 것이다. 청와대 신문고나 공론화위원회도 그 중 하나이다. 사실 국민의 의견수렴이 의회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국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방식이 대의제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신문고는 소통의 창구이지만,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것들도 많아 그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방기, 비전문가 결정의 정당성이 문제되지만, 보통사람들의 의견수렴, 편향적 전문가에 대한 불신 등을 고려한다면 지속적 검토 여지는 있다.

팩트(fact)는 갈등해결의 열쇠이다. 개인의 가치는 다를 수 있지만, 팩트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누군가는 불리해서 팩트를 숨기거나, 또 다른 누군가는 팩트를 알면서도 왜곡하는 경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객관화된 다수로 바꿀 경우 모두가 원하는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간의 고정관념도 깰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모든 노동조합이 약자일 것이라는 생각, 님비현상은 이기적이라는 생각들이다. 노조도 급여수준과 교섭력에 차이가 있으며, 내 이웃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경우라면 불만에 대해 비난보다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합의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권리간 투쟁에서의 정의는 균형이다. 어느 한편의 옳고ㆍ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양 당사자 모두 나름 정당화된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균형은 당사자 스스로가 어느 정도까지 이익을 내어 놓을 것인지 또는 가질 것인지를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할 수 있을 때 달성된다.

갈등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누가 이기는지에 집중된다. 그간의 우리 역사가 편과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줄을 잘 서야 해”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제는 편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사 중 누가 이길지가 아니라 우리 삶속에서 어떠한 노동이 옳은지, 원자력과 태양광 중 어떤 것을 선호할지가 아니라 어떠한 에너지가 우리를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지, 우버와 택시가 아니라 어떤 교통체계가 안전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인 지이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를 일컫는다. 서로 엉켜있는 형국이라면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이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두 가지를 잘 엮는다면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것들을 만들 수 있다. 갈과 등을 엮어 새로운 쓰임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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