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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극소수자, 프레디 머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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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극소수자, 프레디 머큐리

입력
2018.11.21 18:30
수정
2018.11.21 20: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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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중의 소수자. 영국 록밴드 퀸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1946~1991)의 삶을 축약할 만한 말이다. 머큐리는 태생부터 소수자이고 비주류였다. 그의 조상은 페르시아(현재 이란)에서 7세기 무렵 인도로 옮겨갔다. 아랍인의 침공을 피해서였다. 머큐리가 태어난 곳은 아프리카 잔지바르(현재 탄자니아)다. 아버지 때 이곳에 정착했다. 머큐리는 잔지바르에서 자라나다 영국령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십대 후반 무렵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유랑으로 점철된 가족사다.

□ 한 때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경영했던 영국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다. 앵글로색슨 일색이 아닌데도 차별은 존재한다. 파록 불사라(머큐리의 본명)에게도 차별은 피해가지 않았다. 최근 퀸 열풍을 불러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머큐리가 20대 시절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항공 수하물 처리 일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동료들은 머큐리를 ‘파키’(파키스탄 사람을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말)라고 부른다. 머큐리는 차별적 호칭에서조차 제대로 호명되지 못했다. 극소수자의 설움이다.

□ 머큐리 집안은 대대로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지만 현재 신도 수는 20만 명도 안 되는 소수 종교다. 머큐리 가족이 무슬림이었다면 소수자 중 그나마 다수자이었을 것이다. 머큐리의 성 정체성도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 여러 소수자의 정체성이 포개진 머큐리는 음악으로 주류 중의 주류가 됐다. 전 세계에서 팔린 퀸의 앨범 수는 대략 3억장. 대중음악사에서 머큐리는 상층부 극소수자다.

□ 머큐리와 퀸 활동을 함께 한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로저 테일러(드럼), 존 디콘(베이스)은 명문 임페리얼칼리지와 킹스칼리지런던 등에서 공부했다. 소수자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머큐리가 지독한 고독에 시달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동료들은 극소수자 머큐리를 껴안고 이해하려 했다. 함께 토론하고 갈등하며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었다. 동료들이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 머큐리를 대했다면 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에서 한 중학생이 동급생의 집단폭행을 피하려다 추락사했다. 다문화 가정 학생으로 평소 괴롭힘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중ㆍ장년층의 추억을 소환하고, 20대까지 퀸에 열광한다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정말 퀸을 제대로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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