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적폐가 된 두 빙상 전설… ‘1인 왕국’ 지어 선수 선발 등 전횡

알림

적폐가 된 두 빙상 전설… ‘1인 왕국’ 지어 선수 선발 등 전횡

입력
2018.11.16 04:40
수정
2018.11.16 09:39
2면
0 0

 컬링 도입 선구자 김경두, 빙상계 신화 전명규 

 乙인 선수들 비리 폭로 계기 갑질 제보 쏟아져 

평창동계올림픽 이른바 ‘노선영 왕따 사건’으로부터 빙상계의 적폐 논란이 촉발돼 온 국민의 공분을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충격적인 고발이 이뤄졌다.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딴 ‘팀 킴’ 김은정(28), 김영미(27), 김선영(25), 김경애(24), 김초희(22)가 얼마 전 대한체육회 등에 호소문을 보내 지도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폭로한 것. 두 사건에는 그 분야의 ‘대부’ ‘거두’라 불리는 특정인이 해당 종목을 좌지우지하고 전횡을 일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경두(62)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전명규(55) 한국체대 교수가 그들이다.

한국 컬링의 선구자로 불렸지만 제자들의 폭로로 민낯이 드러난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컬링의 선구자로 불렸지만 제자들의 폭로로 민낯이 드러난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경두 전 부회장은 1990년대 컬링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국에 컬링을 도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길을 닦은 주인공이다. 2006년 그의 주도로 경북 의성에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컬링전용경기장인 컬링훈련원은 종목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명규 교수 역시 빙상에서는 신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쇼트트랙에 처음으로 작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그는 1987년 캘거리 대회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까지 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만 11개를 따냈다. 빙상연맹 전무이사였던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는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꺼번에 처음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은 체육계의 고질인 조직 사유화로 흘렀다. 10여 년 전 한국에 단 하나뿐인 컬링장을 쥐락펴락한 김 전 부회장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는 얼마 전 컬링훈련원장에서 물러났지만 훈련원은 여전히 김 전 부회장이 지배 아래 있다. 지금 훈련원장을 맡고 있는 오세정 경북컬링협회장은 김 전 부회장의 오랜 친구고 김 전 부회장의 아내가 훈련원 실장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 전 부회장의 딸과 사위는 평창올림픽 여자, 믹스더블 감독이었고 아들은 남자 팀 선수였다. 또한 김 전 부회장 아내는 대구협회 이사, 여동생은 울산협회 전무이사, 남동생은 컬링연맹 전 경기력향상위원회 부위원장, 처남은 울산협회장, 조카는 전 국가대표 전력분석관으로 컬링연맹과 산하 시도연맹 곳곳에 친인척이 포진해 있다. 한 컬링 인사는 “불모지에서 시작하느라 처음엔 가족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는 정리했어야 했다. 특히 김 전 부회장이 친인척과 친한 사람만 싸고도는 바람에 없던 파벌이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달 국정감사에 참석한 전명규(왼쪽) 한국체대 교수. 연합뉴스
지난 달 국정감사에 참석한 전명규(왼쪽) 한국체대 교수. 연합뉴스

전 교수는 빙상연맹 이사회를 자기 편 사람들로 채웠고 반대 세력이나 눈 밖에 난 선수들을 과감히 내쳤다. 빙상계에선 전 교수 한 마디면 훈련 방법, 대표 선발, 올림픽 메달, 실업팀 입단 등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한 빙상 관계자는 “1인 지배 구조라고 보면 된다. 전 교수는 오직 성적만 좋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성도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A코치는 “쇼트트랙은 심판 영향이 큰 종목인데 심판도 전부 전 교수 사람”이라며 “대표 선발전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전 부회장은 2013년부터 약 3년 간 컬링연맹 운영위원장이었다. 한 관계자는 “운영위에서 기금조성과 예산 편성, 사업계획 수립 등 모든 걸 결정했다. 운영위는 위원장 포함 7명이었는데 김 전 부회장 측근들이 5명이나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부회장은 현재 관리단체로 지정된 컬링연맹과 껄끄러운 관계다. 그는 컬링연맹으로부터 1년 6개월 징계를 받은 게 부당하다며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심리 당일 ‘팀 킴’ 선수들을 법정에 병풍 세우려 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팀 킴 선수들. 연합뉴스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팀 킴 선수들. 연합뉴스

전 교수는 2002년 한국체대 교수로 임용된 후 빙상장 운영의 전권을 쥐고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체대 빙상장을 사교육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사설 강좌로 초중고 선수반을 운영했고, 자신의 측근들을 강사로 고용해 높은 수입을 보장해줬다.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는 “한국체대 빙상장인데 재학생 선수보다 실력 좋은 고등학생 선수 위주로 더 많이 훈련했다. 그들을 나중에 자기 학교로 입학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은 철저히 약자였던 ‘을(선수)’의 폭로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팀 킴’의 호소문으로 김경두 전 부회장의 민낯이 드러난 이후 그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빙상에서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였던 노선영(29)이 “전 교수 주도로 특정 선수가 특혜를 받고 있고, 단체 종목인 팀 추월 훈련은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고 인터뷰한 게 촉매가 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시작됐고 전 교수 전횡이 드러났다. 또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간판 심석희(21)를 평창올림픽 전 폭행해 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가 옥중편지를 통해 폭행 사건 이면에 전 교수가 있다고 털어놓은 게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도 전 교수에게 결정타였다.

평창올림픽 여자 팀 추월의 이른바 ‘왕따 논란’은 빙상 적폐 논란이 불거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선영(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여자 팀 추월의 이른바 ‘왕따 논란’은 빙상 적폐 논란이 불거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선영(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전 교수는 “앞으로 빙상에서 어떤 직위도 맡지 않겠다”고 고개 숙여야 했다. 김 전 부회장은 아직 사과문 등 어떤 의사 표명도 하지 않고 일단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합동 감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일 감사에서 부적절한 횡령, 포상금 착복, 강요, 폭언 등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김 전 부회장은 컬링계를 완전히 떠나야 할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