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정상회담 미루며 압박하자 核 병진 노선 복귀 시사
2. 美 “대북 대화 자체가 시혜” 인식… 美의 ‘北 길들이기’
3. 만남 자체에 과도한 의미… 톱다운 협상의 구조적 한계
상호 합의로 일정이 잡혔던 고위급 북미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돌연 미뤄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벌써 세 번째다. 외교사상 이례적 패턴은 회담 자체에 큰 의미가 부여되는 ‘톱다운’(하향식) 협상의 구조적 한계와 파격을 불사하는 두 북미 정상의 성향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예정된 고위 북미 접촉이 처음 무산된 건 올 5월 24일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측이 보여준 극도의 분노와 노골적 적대감”을 이유로 거론하며 6ㆍ12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거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 서한 형태로 전격 통보했다.
석 달 뒤(8월 24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네 번째 방북 계획이 발표 직후 갑자기 취소됐다. 이번에도 테이블을 엎은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당시 적대적 내용이 담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비밀 편지가 불발 배경이 됐다고 당시 미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번의 경우 회담 예정일(8일) 하루 전에 미 국무부가 북미 고위급 회담의 연기 사실을 발표했고, 북측이 ‘서로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되풀이되는 회담 연기의 요인은 대략 세 가지다. 우선 미국의 ‘북한 길들이기’다. 5, 8월이 이에 해당한다. 민주당ㆍ공화당 상관없이 미 정부는 대북 대화 자체를 시혜(施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때문에 북한이 고분고분하지 않을 경우 “기껏 만나줬더니 은혜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 탓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국무부는 “순전히 일정 문제”라고 설명했지만 세 번째 회담 연기가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내년으로 미루는 미국의 강수에 종전(終戰)선언을 연내 마무리한 뒤 비핵화와 제재 완화 교환을 위한 본격 협상에 착수하려던 구상이 꼬인 북한이 핵ㆍ경제건설 병진 노선 복귀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초강수로 응수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강경론을 밀어붙이던 1~6월, 상호주의 원칙에 합의해 가는 6~10월, 비핵화ㆍ상응조치 교환 구도가 구체화하는 10월 이후 등 북미 관계 단계마다 큰 회담이 취소되는 고비가 있었지만, ‘동시ㆍ단계적 교환’이라는 북측 요구가 관철돼 왔다는 게 큰 흐름”이라며 “북한이 배수진을 친 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회담 성사 사실의 의미가 내용을 압도해버리는 트럼프ㆍ김정은 협상 방식의 특성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 톱다운 협상의 경우 ‘빅딜’로 협상을 가속화할 수 있지만 정작 테이블 펴기가 어려워 실무회담마저 중단되는 교착 상태를 초래하기 일쑤라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외교 관례를 좀체 안 지키는 트럼프 대통령, 실무진한테 권한을 주지 않는 김 위원장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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