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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교의 극락은 사후세계가 아니다

입력
2018.11.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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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스위스에서는 전 국민에게 매달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한 일이 있었다. 부결되기는 했지만, 이런 법안이 상정된다는 자체만으로 수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이 뉴스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더랬다.

시급 1만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스위스의 경제력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이런 뉴스를 듣게 된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스위스에 가서 살고 싶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좋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는 우리에게 크나큰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풍요와 세계사적 위상이 어린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최빈국 소년이 스위스를 동경한다 해도 그곳에 가서 살 방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소년이 윤회론을 믿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죽어서 윤회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 태어나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스위스가 사후세계가 아닌 것처럼, 불교의 극락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는 인본주의 종교이기 때문에 모든 붓다는 우리와 같은 인간세계에만 존재한다. 즉 아미타불이 존재하는 극락이란, 서쪽의 먼 곳에 위치하는 살기 좋은 인간계의 삶터라는 말이다. 극락과 관련해서 흔히 언급되는 ‘극락왕생(極樂往生)’이라는 말 역시 ‘극락에 가서 태어난다’는 의미다. 윤회를 통한 극락에서의 재생, 이것이 바로 극락왕생인 셈이다.

실제 불교에는 극락 외에도 기독교의 천국과 유사한 신들의 세계인 천당이 있다. 천당 하면 혹자는 기독교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천당이라는 명칭은 천상세계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다.

그렇다면 왜 불교도들은 천당이 아닌 극락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극락이 천당보다도 더 좋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신들의 세계보다 인간계가 더 좋을 수 있을까? 불교는 감각적인 쾌락보다는 공부를 통한 내면의 향상을 우선시한다. 이 때문에 탁월한 붓다의 세계는 천당보다 우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유신론적 종교와는 다른 불교만의 독특한 이상세계관이다.

극락 외에도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마왕 역시 특별하다. 마왕 하면 흔히 지옥에 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의 마왕은 지옥이 아닌 고급의 천상세계에 산다. 단테의 ‘신곡’에서 루시퍼가 지옥의 가장 밑바닥인 9층에 머무는 것과 대비되는 사뭇 다른 장소와 이해방식인 셈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의 마왕은 법을 무력화시키는 거대 자본가에 비견될 수 있다. 이들은 최고의 법무팀을 통해 법에 걸리지 않는 삿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며,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한다. 2008년 전 세계를 금융위기에 몰아넣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이들의 과도한 욕심이 빚은 세계적인 참사였다. 당시 부채 규모는 660조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역들은 대부분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부를 상속했으며, 피해를 본 것은 전 세계의 애꿎은 서민과 중산층들이었다. 불교가 말하는 마왕은 바로 이런 존재인 셈이다.

천당과 지옥을 양분하고, 선과 악 혹은 신과 악마로 대비하는 구조는 분명하고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이런 명확성은 인간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불교는 보다 사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것이 불교의 마왕은 높은 천당에 살지만 삿된 존재라는 인식이다.

불교의 극락과 마왕에 대한 관점은 분명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회적인 현실에서 비추어 본다면, 이런 방식은 분명 타당하다. 그래서 나는 흔히 ‘불교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려운 것이며, 불교는 이런 세계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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