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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 “남편 신성일, 죽는 순간까지 영화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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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 “남편 신성일, 죽는 순간까지 영화만 사랑”

입력
2018.11.04 17:22
수정
2018.11.0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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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앵란씨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씨의 빈소에서 조문객과 인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엄앵란씨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씨의 빈소에서 조문객과 인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참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4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씨가 평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였던 배우 엄앵란씨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작별 인사다. 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취재진을 만난 엄씨는 딸 강수화씨에게 전해 들은 남편 신씨의 임종 순간을 담담히 떠올리면서 회한에 젖었다. 엄씨는 “그 남자(신성일)는 일밖에 몰랐다. 그런 사람이라서 내가 존경했고 55년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신씨는 건강 회복에 굳은 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돼 4일 전남대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투병 중에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관객을 만났고, 신작 영화 기획을 하면서 동료 영화인과 활발히 교류했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했던 터라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영화인들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엄씨는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편은 아파서 까무러치는 순간에도 영화 얘기를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이렇게나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있어서 오늘날 한국영화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고 말했다. 과거 유방암 수술을 했던 엄씨는 몸이 불편해 거동이 어렵다. 신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별세 사흘 전이라고 한다.

신씨와 엄씨는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에서 처음 만나 여러 청춘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64년 서울 광장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하객과 팬 수천명이 몰려들어 부부를 축하했다. 당시 ‘신엄커플’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엄씨는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맨발의 청춘’(1964)을 부부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그는 “이 영화가 크게 흥행해서 극장도 살렸고, 제작자도 살렸다”며 “남편이 그 역할을 참 잘 소화해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씨는 가정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1975년부터 사실상 별거를 시작했고 신씨는 훗날 자서전에서 외도 사실을 고백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평생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신씨는 아내 엄씨가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곁에서 간호했다.

엄씨는 “남편은 대문 밖의 남자였지 집안의 남자가 아니었다”면서 “일에 미쳐서 집안 일은 나에게만 맡겼다. 그렇기에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고, 어려운 시절에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 영화 말고는 신경을 전혀 안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남편은 욕심이 너무 많았다. 영화 제작도 하고, 극장을 인수했다가 날리기도 했다. 밖으로 (돈을) 가져가지만 했지 집으로 가져오지를 않았다”고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을 떠올렸다.

엄씨는 “밖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동지다. 영화하는 동지다. 끝까지 전진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며 동지애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늘그막에 재미있게 살려고 했더니 (그렇게 떠났다)”라고 끝내 말끝을 흐렸다.

엄씨는 “남편이 저승에 가서는 못 살게 구는 여자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놀러 다니면서 잘 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덧붙여 “어제(3일)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저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전화가 왔고,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며 “팬들의 전화를 받고 나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힘이 생기더라”고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신씨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과 안성기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생전 거주하던 경북 영천 자택 뒷산에서 영면에 든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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