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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남북경협 큰 틀엔 동의... 비핵화 연동 탓 한미 시각차”

입력
2018.11.01 18:00
수정
2018.11.01 20:1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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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문가 홍민 박사(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내년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 본격화할 것

미국 제재 해제 때까지 남북경협이 대체재 역할

남북경협은 북한 비핵화 촉진하는 경제적 인센티브

남북미 비핵화 큰 방향에서 근본적 시각 차 없어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과 종전선언 연내 이뤄진다

한미가 대북제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은 맞나. 북한 문제에 정통한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미가 비핵화 해법의 큰 틀에서 근본적으로 시각차가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면 남북경협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남북경협은 단기간에 제재를 풀기 힘든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유력한 대체재”라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한미가 대북제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은 맞나. 북한 문제에 정통한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미가 비핵화 해법의 큰 틀에서 근본적으로 시각차가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면 남북경협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남북경협은 단기간에 제재를 풀기 힘든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유력한 대체재”라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9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이후 철도ㆍ도로 연결, 북한 양묘장 현대화 등 남북 협력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해 북미 협상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일각에선 남북경협 과속과 한미공조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 실상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을 만나 남북경협 과속론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은 노선 전환을 통해 가고자 하는 전략적 방향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취한 정책들을 봤을 때 개성공단이라는 제한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과감하게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와도 상당 부분 교감을 이뤘다고 본다. 남북이 가려는 방향에 대해 미국도 본질적으로 다른 경로를 생각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비핵화가 남북경협 및 제재와 연동돼 있다 보니 속도나 절차에서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다.”

-최근 남북경협 움직임에 대해 미국도 큰 방향에서 동의한다는 건가.

“그렇다. 남북미가 세부 설계도까지 합의한 개념은 아니지만, 최소한 북한을 경제발전과 번영이라는 비전으로 유인해내는데 대해 상당한 교감을 이뤘다고 본다. 물론 북한과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방식이 다를 수는 있다. 협상이 본격화하면 미국이 상응 조치를 동시에 하느냐, 비가역적 단계에 돌입하는 지점부터 하느냐 정도 차이다. 중요한 건 미국 내에서 대북제재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행정명령을 유연화해 일정 부분 풀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이 원하는 해제 효과가 나오긴 어렵다. 근본적으로 풀려면 의회를 경유하거나 특별법을 통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시작과 미국의 제재 해제까지 공백이 불가피하고, 남북경협이 상당 부분 이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다.”

-미국 제재가 풀릴 때까지 남북경협이 대체재 역할을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비핵화를 최대한 끌어내려면, 제재 해제와 관련된 일련의 양보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내부 사정상 바로 줄 게 없다면, 대체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이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미국은 비핵화 방식에 합의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하고, 남북경협도 바로 풀어주기 어렵다. 결국 북한에게서 최대치의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남북경협을 제어하는 듯한 원론적 얘기를 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순서와 미국의 상응 조치들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면, 남북경협은 미국이 줄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 될 것이다. 언론이 현상적 측면만 보고 남북 과속을 얘기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최근 진행된 남북미 간 프로세스를 보면 남북경협에 대한 미국의 의견 표명은 국면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미국이 만든 북한 제재 강화법은 단순히 핵만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다. 정치범수용소나 억류자 등 인권 문제까지 해결돼야 제재를 풀 수 있다. 의회가 단번에 해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공백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면 미국도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재 해제 아닌 대체 수단도 마땅치 않다. 이 공백기를 대체해줄 수 있는 게 남북경협이다. 미국도 북미 협상 이후 남북경협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이 작동할 수 있을까.

“대통령 행정명령이나 국무부 판단을 통해 예외 인정이 가능하다. 이미 7월 중순 폼페이오 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남북경협 제재 위반 여부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무부 차원에서 세밀하게 검토된 내용은 국무부 내지 행정명령 차원으로 면제가 가능하다. 핵미사일 고도화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사업이라면 제재 위반으로 보기 힘든 부분도 있다. 남북경협의 내용이 최소한 비핵화를 촉진하거나 북한을 평화체제로 견인하는 평화재,안보재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과연 제재 위반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북제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남북경협이 비핵화를 촉진하는 경제적 인센티브이자 평화재 역할을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다고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주요 성과로 포장하려는 욕심을 접은 듯하다. 단기간 협상으로 졸속 결과를 도출해내는 방식이 되기 쉬운 탓이다. 그런 접근이 낳을 부정적 시각을 불식하고 실질적 성과는 국내 정치에서 어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기술적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6ㆍ12회담 직후 “비핵화가 10년, 15년 굉장히 길게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비핵화의 기술적 과정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정치적 시간을 감안해 나온 발언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세 단계로 바뀌어왔다.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는 선비핵화를 1년 내 끝내라는 이른바 존 볼턴의 거친 방식이었다. 6ㆍ12 이후에는 포괄적 합의를 하되 단계적으로 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고, 지금은 상응 조치를 고려하면 장기 레이스로 봐야 한다는 인식에 이른 듯하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방식에 대한 결론이 도출되면 남북경협이 본격화할 수 있나.

“남북경협은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시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폼페이오는 ‘큰 진전’, 김정은은 ‘크게 만족’이라고 했다. 늘 비핵화만 얘기하던 미국이 사후 조치를 처음 거론했다. 오찬에선 ‘북미 간 상호 접촉과 내왕을 활성화하는 데 있어서 흥미진진한 얘기를 교환했다’는 표현도 나왔다. 큰 뼈대에서 의미 있는 의견을 나눴다는 거다.”

-그럼 후속 협상이 왜 지지부진한가.

“북한은 풍계리 핵시설 폐기를 국제참관단에 검증 받겠다고 했다.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미국도 중간선거 국면에서 실무협상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북미 협상의 진전된 내용을 가시화하는 게 선거 국면에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해 휴지기를 갖는 것이지, 교착으로 보긴 힘들다. 북미가 중간선거 이후 고위급 회담을 갖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미 회담 실무를 맡은 비건 대표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남북경협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일개 차관보급이 대북제재를 강조하거나 속도 조절을 얘기하러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는 건 굉장히 난센스다. 속도 조절이라면 외교부 장관이나 이도훈 본부장에게 얘기하는 게 맞다.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과 다름없는 비서실장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결례이고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미국은 계속 원칙적인 얘기를 해왔는데 새삼스레 비서실장을 만날 이유도 없다. 중간선거 이후 풍계리ㆍ동창리 검증, 종전선언, 2차 북미정상회담 등 향후 일정에 대해 미국 입장을 전달하고 우리 의견을 들었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경협 진행 속도가 더디다며 불만을 표출했는데.

“북한은 제재와 무관한 분야에서 남한이 좀 더 과감해지길 원하고 있다. 북한의 불만을 과거 패턴적으로 해왔던 ‘생떼를 쓴다’는 시각으로 볼 게 아니라, 협력 내용이 제재 위반이냐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재와 무관한 분야라면 미국에 적극적으로 얘기해 협력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게 북한 주문이다. 비핵화 여건 조성을 위한 초보적 수준의 논의를 당장 제재를 무력화하거나 경협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처럼 해석하는 건 잘못이다.”

-미국이 보조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더 과감한 경협이 가능한가.

“법리적 측면에서 그간 이뤄진 남북 관계를 제재 위반으로 보긴 어렵다. 미국도 검토를 했고 딱히 위반사항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비핵화 협상력 제고를 위해 보조를 맞추라는 원론적 얘기를 자꾸 하는 거다.”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 답방이 이뤄질까.

“이뤄진다고 본다. 물론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서울에 오면 모양새가 더 좋다. 북미 합의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진전된 형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면 9월 평양선언보다 더 확장된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연내 만나야 남북 합의를 이행했다는 패턴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 거다. 내년 이후 남북미가 지속적으로 비핵화를 진전시켜나가는 결속구도를 유지하는데도 중요하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종전선언과 연동된 이벤트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도 종전선언에 동의한 건가.

“북미는 6ㆍ12회담에서 관계 정상화, 평화정착, 비핵화, 인도적 유해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유해송환, 풍계리 핵시설 폐기 등 이른바 ‘선의의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북미 간 인적교류, 연락사무소 개소, 대북제재 초기 유연화 등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이 민감해 하는 2개 군사훈련만 중단했다. 북한이 다음 단계인 ‘신뢰 조성’으로 나가게 하려면 연내 종전선언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6ㆍ12회담에서 남북 간 종전선언 추진 합의를 존중한다고 했다. 미국이 남북경협도 막고 종전선언도 반대하면 국내에서 반미 정서가 번질 수 있다. 미국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연내 종전선언을 매듭짓고 가겠다는 건 남북미가 사실상 교감하는 내용이다.”

-종전선언의 형식은.

“미국은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 비핵화에 우호적인 환경을 끌어낼 수 있다면 전략적으로 낮은 단계에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북한도 종전선언이 과도하게 높은 수준으로 설정되면 자신이 양보해야 할 내용도 커지기 때문에 다음 단계 대화로 가기 위한 용도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미중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정상급 선언에 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유력한 대안은 실무급에서 종전선언문에 합의하고 외교부 장관들이 확인한 뒤 각국 정상이 자국에서 종선선언문을 발표하고 서명하는 방식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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