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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시 이용 티켓

입력
2018.11.0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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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 책을 읽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고, 공연을 보고 싶으면 시립합창단의 무료공연을 볼 수 있다. 집 앞 도로를 이용할 때도 돈을 내지 않는다.

공짜라고 이야기했지만 진짜 공짜는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운영하기 위해 우리는 세금을 낸다. 돈을 벌 때도, 쓸 때도, 물건을 사거나 팔 때도, 집이나 자동차를 소유할 때도. 그렇게 우리 모두가 낸 세금으로 우리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데 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할 때 따로 돈을 내지 않는다.

‘함께 내고 함께 사용하기’는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한 방식이다. 사람이라면 소득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이 있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기회와 재능, 행운 등은 모두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더해져, 더 많이 벌거나 더 많이 쓰거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경제적 제약 없이 누린다. ‘함께 내고 함께 사용하는’것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난 학교 갈 때 도시락을 싸갔지만, 내 아이는 무상급식을 먹는다. 2008년 이전에는 돈을 내고 갔던 많은 국공립박물관들을 지금은 무료로 갈 수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돈을 받기도 한다. 남산 1호 터널에서 징수하는 요금은 터널이용료가 아닌 혼잡통행료다. 도심 교통량을 줄이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 돈을 받는다. 버스나 3인 이상 탄 승용차는 요금을 내지 않거나, 요금 징수 시간이 평일 오전 7시~오후 9시까지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불’은 한정된 자원(세금)의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강원도립극단은 10월에 뮤지컬 ‘메밀꽃 필 무렵’을 무대에 올리면서 무료공연의 관례를 깨고 돈을 받았다.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원으로 시중 공연보다 저렴했다. 유료화 전 강원도립극단 공연의 사전예매율은 평균 95%였지만, 40%의 예매자는 공연장에 오지 않았다. 유료화 후 예약부도율은 5%로 줄어들었고, 총 12회 중 9회가 매진됐다.

3년 전에는 ‘축제’를 유료화하는 일이 있었다. 그동안 축제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이었지만, 유료화 이후 돈을 낸 사람만이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진주남강유등축제에 1만원의 티켓값을 매긴 진주시는 행여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 유등을 구경할까봐 남강 주위를 빙 둘러 펜스를 쳤다. 부산불꽃축제는 구경하기 좋은 자리에 돈을 받았다. 티켓값은 7만~10만원이었다. 불꽃놀이를 보고는 싶으나 돈을 낼 의사나 능력이 없는 시민들은 시간을 들여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맡았고, 돈을 낼 의사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티켓을 사서 여유있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두 축제를 유료화한 지 3년이 된 올해 10월, 두 축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다시 무료로 전환했고, 부산불꽃축제는 여전히 돈을 받았다. 진주시는 무료화가, 부산시는 유료화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공공이 하는 모든 행사를 무료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돈을 내는 것이 더 공정하거나 세금을 효율적으로 쓰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왜 애초에 공공 영역이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세금으로 함께 지불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문턱을 낮춰놓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유료든 무료든, 그것이 공공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돈을 받으면 일정 부분 공공성이 올라갈 수 있다. 그 돈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돈이 곧 공공성이다’라는 차원의 접근은 좀 곤란하다. 그런 것은 시장(Market)의 몫이고, 또 시장이 훨씬 잘한다. 두 축제의 건승을 빈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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