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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이삭의 아내, 가부장적인 사회를 일깨우다

입력
2018.10.27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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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17세기 전반). 우물가에서 신붓감을 찾는 아브라함의 종을 만난 리브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17세기 전반). 우물가에서 신붓감을 찾는 아브라함의 종을 만난 리브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무척이나 남자들의 세상이었다. 구약성경의 세계는 아주 가부장적인 남자 중심의 사회였다. 그 가운데에 가히 놀랄 만한 여성 한 분이 등장하는데, 이름은 리브가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에는 네 명의 유명한 족장이 등장한다. 물론 모두 남자다. 그런데 그 네 명 가운데에 한 명을 이 여인 리브가와 교체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 리브가의 남편 이삭의 자리는 실상 리브가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한 혈통이다. 족장은 네 명이지만, 사실 이야기 덩어리는 셋이다. 이삭의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거의 딸려있는 듯하다. 어째서 이삭의 이야기만 미미하게 남겨지게 되었을까?

이삭이 다른 세 족장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방랑’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로 갈 바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고향 땅을 떠나 방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야곱도 집을 떠나 멀리 삼촌 집에 가서 살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 넘겨져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반면 이삭은 그런 방랑의 경험이 뚜렷하지 않다. 부잣집의 귀한 외동아들처럼 살았다.

이삭이 다른 족장들과 크게 다른 점이 또 있다면, 집안의 결정적인 사안에 있어서 자신보다 아내가 더 주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요새는 여성이 집안의 가세를 책임지기도 하고, 오랜 전통을 깨고 교회에서 목사로 서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교회나 가정에서 리더는 남자나 남편인 것이 일반이다. 그런데 그 옛날 수천 년 전, 리브가는 하나님이 인정한 집안의 가장 같았다.

 ◇남편을 뛰어넘은 아내 리브가. 

놀랍게도 하나님은 중요한 일들을 이삭이 아니라 거의 그의 아내 리브가하고 나누었다. 집안의 매우 중요한 일, 미래 이스라엘 민족의 중요한 일을 리브가와 이루어 나가신다. 리브가는 결혼하여 처음엔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남편 이삭이 기도해 임신에 이르기는 했지만, 정작 태어날 아이의 중요한 미래는 하나님이 이삭이 아닌 리브가에게 알려주셨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 나아갔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창세기 25:22-23) 물론 같은 계시를 이삭에게도 하나님이 했을 수는 있지만, 성경은 리브가와의 소통만 부각하고 있다.

나중에 이삭이 늙어 두 아들을 축복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동생이 아닌 형에게 우월한 축복을 하려 했다. 아내 리브가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전해 받지 못했을까. 살다가 잊어 버렸나. 아니면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첫째 에서를 축복하려 했을까. 결국 리브가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을 교묘하게 속이고 막내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계략을 짠다. 이렇게 억척스럽게 리브가는 집안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간다.

 억척스런 엄마 리브가. 

이렇게 남편과 첫째 아들 에서를 교묘하게 제치는 바람에 하늘의 뜻은 이어져 갔지만, 가정에는 큰 풍랑이 아닐 수 없었다. 리브가는 이를 예상했고, 막내 야곱도 겁을 잔뜩 먹었다.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닙니까?” 이때 리브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7:12-13) 모든 어머니의 마음 그대로다.

이제 난리가 났다.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다.” 이를 알아 챈 어머니 리브가는 가슴 아픈 선택을 한다.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 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너의 형이 잊으면, 거기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내마.” 어머니 리브가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내가 어찌 하루에 자식 둘을 다 잃겠느냐.”(27:41-45)

극성맞은 엄마로 보일 수도 있다. 지나친 막내 사랑에 집안을 흉흉하게 했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집안을 향한 하늘의 뜻을 집요하게 관철시키려 했다. 장남 에서는 태생이 거칠고 강했다. 여리고 기죽어 보이는 막내 야곱을 향한 내리사랑이 리브가에겐 컸다.

17세기 헤르브란트 반 덴 에크하우트의 그림. 신부 리브가를 맞는 이삭을 그렸다.
17세기 헤르브란트 반 덴 에크하우트의 그림. 신부 리브가를 맞는 이삭을 그렸다.

 당찬 소녀, 리브가. 

아주 당차고 독립적인 여인이다. 그녀의 당찬 성격은 어릴 때에도 남달랐다. 이삭의 신붓감을 찾으러 길을 떠났던 종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리브가의 나이는 약 13세 정도였다. 소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올 때에, 이삭의 종이 달려 나가서, 그 소녀를 마주 보고 말하였다. “이 물동이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주시오.” 당시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물의 물을 긷는 일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의 몫이었다. 허름하고 낯선 남자가 어린 소녀에게 다가와 물을 달라고 하면, 지금 같으면 얼른 도망가 부모에게 일렀어야 했을 일이다. 당시 고대사회는 지금보다 더 흉흉한 사회였다. 그런데 소녀 리브가의 반응은 이랬다. “리브가는 ‘할아버지, 드십시오’라며 급히 물동이를 내려, 손에 받쳐들고서, 그 노인에게 마시게 하였다.” 당찬 소녀는 친절을 넘어 그 노인을 이렇게 압도했다. “소녀는 이렇게 물을 마시게 하고 나서, 제가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실컷 마시게 하겠습니다"하고 말하면서, 물동이에 남은 물을 곧 구유에 붓고,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더 많은 물을 길어 왔다. 그 처녀는, 노인이 끌고 온 모든 낙타들에게 먹일 수 있을 만큼, 물을 넉넉히 길어다 주었다.(24:16-20) 적극적이고, 용기 있으며, 배려심도 컸다. 힘도 셌다.

그 종이 소녀의 가족을 만나 혼인을 결정하고, 이제 데려가겠다고 하자 가족이 난리가 났다. 아주 먼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리브가를 평생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어서였다.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저 애를 다만 며칠이라도,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있다가 떠나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아이를 불러다가 물어 봅시다.’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24:55-58) 하나님이 이삭이 아닌 리브가를 통해 집안일을 풀어 나가시는 대에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로맨스의 주인공 리브가. 

성경에서 어쩌면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했던 신부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이삭이 들로 나가 산책을 했다. 자기 신부를 찾으러 떠난 종이 언제쯤 돌아오나 보려고 서성였던 것 같다. 그때 “고개를 들고 보니, 낙타 행렬이 한 떼 오고 있었다.” 바로 종과 리브가였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24:63-65) 이로 인해 유대 결혼식의 전통 중 하나가 생겼다. 신부가 신랑이 등장하면 베일을 가리는 것이다.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67)

리브가는 ‘모든’ 여인이다. 우리들의 억척스런 엄마다. 때론 아버지도 제압하지만, 한때는 로맨스에 가슴 설레던 신부였다. 친구들과 까르르 웃느라 물 긷는 것도 힘들지 않았던 신나고 힘세고 착한 소녀였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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