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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지켜보고 있다

입력
2018.10.05 10:18
수정
2018.11.08 15: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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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면 착한 몰카 인정합니다.” “남자들이 네 편이 되어줄게. 그걸 위해 해야 할 일 알지? 포인트 빵빵하게 충전해뒀다.”

한 여성 연예인이 전 남자친구를 강요ㆍ협박ㆍ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추가 고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실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이 정도만 겨우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이고, 과거에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찍은 것으로 알려진 동영상을 보고 싶다며 공유를 바라는 댓글부터 시작해서 가해자에 이입해서 피해자의 행실을 따지는 댓글까지 온갖 2차 가해성 발언들이 젊은 남성 비율이 높다는 지표가 드러나 있는 포털의 댓글 창에 모여있다.

수만의 여성이 모인 성별에 따른 편파 판결과 불법 촬영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미 몇 차례나 이루어졌고, 당장 6일에 또 한 번의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데이트 폭력과 디지털 성폭력 문제, 불법 촬영물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인 지 한참이다. 하지만 과연 사회는, 그리고 이와 관련한 범죄의 대부분을 저지르고 있는 남성들은 변하고 있는가? 자신들이 지금 범죄를 옹호하고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의식 자체도 없이 수치심도 모르고 적어둔 댓글들 앞에서 그런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해 혐의를 받고있는 인물은 이 동영상이 여성 연예인의 앞으로 남은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 동영상만 있으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믿음을 그는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그건 그런 사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불법 촬영과 유출이라는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쌓아온 직업인으로서의 성취를 뒤로하고 대중에게 고개 숙여야만 했던 여성 연예인들의 경우에서 그는 자신이 권력을 가진 쪽이라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동의 없이 촬영된 불법 촬영물의 유포로 수없이 괴로워하던 여성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뒤에도, “유작입니다”와 같은 인간 이하의 발언을 하면서 여전히 불법 촬영물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소비했던 남성들의 문화가 그에게 그런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왜 이 사회는 지금까지 그 모든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불법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일뿐 아니라 내려받고 시청하는 일 또한 범죄라는 사실을, 일부 남성들에게는 왜 아직까지도 일깨워줘야 하는가.

이 사건은 공고한 강간 문화 안에서 길러진 남성들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알파벳으로 지칭된 여성연예인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돌려보고, 피해자를 불러내 사과를 하게 만든 뒤 대중 권력에 취하고,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온갖 공공장소에서 찍은 불법 촬영물을 소비하며 그게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이 살아온 남성들은 여전히 과거에 산다. 불법 촬영을 해도 가볍게 벌금형으로 그쳤던 세상, 자신들이 찍고 자신들이 유포한 뒤 지워준다며 고통받는 여성의 돈과 영혼마저 뜯어가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던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더는 그런 사회로 남아있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수만의 여성들이 길로 나섰던, 나서게 될 동력이다.

최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불법 영상물 촬영ㆍ유포 시, 법정 최고형 구형” 등 관련 범죄에 엄정한 대처를 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부응해 강남경찰서는 가해 혐의가 있는 전 남자친구의 자택과 직장을 압수수색 했다. 발 빠르고 올바른 수순이다. 이 사건의 수사결과가 “나도 비상용으로 하나 찍어놔야지 안 되겠다”라는 범죄 예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이제 더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사회가 아님을 알려주는 경종을 울려주기를 바란다. 이 수사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들은 피해자가 고개 숙이고 인생이 망쳐지는 사회에 더는 살지 않을 것이다. 엄정히 수사하라. 여성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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