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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통계청장 주변의 수상한 얘기들

입력
2018.08.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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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ㆍ고용 악화 통계후 황수경 돌연 경질

“조직활력 위한 정기인사” 불구 뒷말 무성

정책신뢰 추락 자초, 문 정부 최대악수될 듯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대화 하고 있다.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의 3축에 기반한 사람중심경제 패러다임이 옳은 방향이며 이 기조를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고영권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대화 하고 있다.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의 3축에 기반한 사람중심경제 패러다임이 옳은 방향이며 이 기조를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고영권기자

옛말에 오얏나무 밑에선 갓끈을 고쳐 쓰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끈을 동여매지 말라고 했다. 남이 애써 키운 자두나 참외를 몰래 훔쳐먹는 듯한 오해를 낳아 곤욕을 치르지 말라는 경구다. 황수경 통계청장 교체를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부적절한 처신을 경계한 옛사람의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가계동향조사 등 통계청이 생산하는 소득 및 분배 지표 악화로 인해 문재인 정부 경제 패러다임의 적합성이 뿌리채 의심받는 차에 해당 부처 수장을 돌연 교체해 뒷말과 의혹을 자초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7월 청와대는 황 청장을 임명하며 노동 및 고용통계 여성 민간 전문가이자 소득주도성장을 지원할 적임자라고 한껏 추켜세웠다. 출신지역과 개혁성향으로 인해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나올 듯하자 전문성을 내세운 것이다. 그 덕에 황 청장은 쉽게 안착했고 지금껏 본인 직무나 통계청 업무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재임 1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난데없이 차관급 교체인사 명단에 포함됐다.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010년 이후 청장 임기를 2년 안팎으로 정례화해 통계청의독립성을 강화해온 관행을 굳이 깨고 황 청장을 조기 교체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황 청장 퇴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부처 차관급 인사에 슬쩍 끼워넣은 흔적이 짙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황 청장이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귀울였다”고 자평하면서도 내내 뭔가 아쉬운 듯 눈물을 보여 더욱 증폭됐다. 또 언론 인터뷰에서 퇴임사유를 모른다면서 “어쨌든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도 한몫 했다.

논란이 정치권과 학계, 국회로 번져가고 있지만 청와대의 설명은 상투적이다. “조직에 활력을 불어놓고 일신된 모습을 갖추기 위한 인사이고, 경질이 아닌 정기인사에 따른 교체”라는 것이다. 반면 강신욱 신임 청장 기용 배경은 길게 언급했다. “소득분배ㆍ빈곤정책ㆍ사회통합 분야에 정통한 통계전문가로 신규 정책수요를 반영한 새로운 통계지표 발굴과 조사방법 개선 등 신뢰성 있는 통계서비스를 제공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엇박자를 낸 것에서 비롯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가계동향조사는 저조한 응답률 등 통계의 신뢰성 문제가 줄곧 제기돼 올해부터 폐기될 운명이었으나 분기별 소득개선 추이를 과시하고 싶었던 여당의 요구로 부활한 통계다. 화근은 통계의 정확도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 표본을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늘린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표본이 과도하게 교체됐고 인구 고령화 추이를 반영하다 보니 60세 이상 가구비중도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올해 1ㆍ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지난해 같은 분기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진작에 나왔다.

황 청장에게 결정적 허물이 있다면 이 부분을 명확히 밝혀 보수언론과 야당의 자의적 해석에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이다. 표본이 달라진 만큼 통계적으로 비교 가능하고 의미있는 결과는 1년 뒤에나 나올 것이라고 했다면 정부가 출구를 찾는 일도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통계의 중립성을 더 중시해 ‘고지식하게’ 통계와 정책의 분리 원칙을 고수한 탓에 청와대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황 청장을 배제한 것은 어떤 설명과 변명을 들이대도 문 정부의 최대 악수가 될 공산이 크다. ‘무신불립’이라며 정치의 요체는 신뢰라고 했는데, 국정의 기초인 통계의 신뢰를 스스로 허물었으니 말이다. 소득주도성장 설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새 청장은 “특정 해석을 염두에 둔 통계 생산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지만, 향후 통계청 자료는 매번 ‘마사지’ 의혹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오죽하면 통계청 공무원노조가 “소득분배 및 고용악화 통계가 논란을 빚는 시점에서 단행된 청장 교체는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탄식했겠는가.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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