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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홍길동이 된 인문사회학술

입력
2018.08.06 13:14
수정
2018.08.07 15:4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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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 ‘홍길동전’ 하면 떠오르는, 요즘에도 종종 접하게 되는 글귀의 하나다. 자격을 갖췄음에도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소외당하는 일이 다반사처럼 자행되기에 그렇다.

현 정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순수 기초연구비 예산의 2배 증액을 약속했다. “기초연구에 대한 국가 투자를 임기 내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작년 발언은 그러한 국정지표의 재확인이었다. 실제로 과학기술분야 기초연구비는 작년과 올해 모두 증액되었고, 이 추세라면 임기 말인 2022년엔 2배인 2조5,000억 원으로의 증액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인문사회학술은 그러한 기초연구비 증액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기초연구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처럼 모든 학문 연구의 공통 토대가 되는 학문 연구를 가리킴에도, 정부의 기초연구비 증액은 과학기술로 대변되는 이공계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현 정부 출범 이후 인문사회 R&D 예산은 2017년 3,011억 원대에서 올해엔 2,933억 원대로 줄었고, 현재 한참 편성 중인 내년 예산에선 이보다도 수백억 원 가량 더 감축될 예정이다. 알량하기 그지없는 인문계 연구지원비를 덜어내 이공계로 몰아주고 있다는 볼멘소리마저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이에 한국인문학 총연합회, 전국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인문대ㆍ사회대학장협의회 등이 나서서 인문사회학술도 기초연구비 증액 대상에 당연하게 포함됨을 역설해도, 예산 편성에 결정적 힘을 행사하는 기획재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그들의 잘못된 눈이 임기 내 기초연구비 2배 증액이라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조차 편향되게 왜곡한 모양새다. 그 결과 인문사회학술은, 홍길동이 아들 대접을 받지 못했듯이 국가 권력에 의해 기초연구임에도 기초연구 대접을 못 받는 억울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듯싶다. 가령 최근 불거진 ‘와셋’ 같은 유령 학회를 이용한 학회 활동 실적의 조작이라든지, 부모가 수행한 논문에 중등학생 자녀를 부당하게 공저자로 올리는 등의 연구윤리 위반 사례가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옹색하기 그지없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억설에 불과하다. 이러한 연구윤리 위반 사례의 상당수가 이공계에서 일어났음에도 이공계 기초연구 지원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공계든 인문계든 학계의 절대 다수는 정상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가 건강하게 수행되고 있는 훨씬 큰 쪽은 근거로 삼지 않고, 병든 쪽만을 근거로 연구 지원을 꺼린다는 것은 삼척동자나 지닐 법한 안목이다. 곰팡이 균이 발가락을 공격, 만성 무좀이 생겼다고 하여 발가락을 잘라내는 일은 없다. 무좀에 시달려도 발가락이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면, 발가락 건강을 한층 도모하면서 무좀을 치료하겠다는 자세가 누가 봐도 타당하다. 이것이 한시 바삐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21세기 국제사회의 문명 표준 선점을 놓고 경쟁을 치러야 하는 한국의 관리로서 응당 지녀야 할 안목일 터이다.

한편 인문사회학술의 성과가 미미하다는 편견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된다. 국가 예산이 투여됐다면 그만큼 눈에 띄는 성과가 있어야 계속 지원을 하든 확대하든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기에 지원을 줄임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 역시 삼척동자 수준의, 혹은 그보다 못한 안목의 소산이다. 아이가 달란다고 하여 노상 단 것을 먹이는 어른은 거의 없다. 대신 건강하려면 채소도 먹어야 한다며 먹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떡하든 달래 골고루 먹게 한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누구라도 이리 행한다.

그러나 이는 아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 못할 처사다. 그렇게 먹어봤자 눈에 띄게 바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채를 왜 먹어야 하는지, 달지도 않은 음식은 왜 또 먹어야 하는지를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삼척동자의 안목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식단을 짜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국가 예산 편성은 한 가정의 식단 편성과는 도무지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나게 크고도 중요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편성하는 이들의 안목이 삼척동자와 다를 바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인문사회학술은 본래 뭔가의 속에서 그것을 더욱 쓸모 있고 한층 가치 있게 해준다. 장식품처럼 뭔가의 겉 표면에 붙어서가 아니라 뭔가의 안에서 그것의 고갱이를 이루며 존재하고 작동된다. 언뜻 보기에 인문사회학술의 성과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한 꺼풀 안을 들춰볼 줄 아는 이들은 인문사회학술의 의미와 진가를 제대로 보아낸다.

그래서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한 세계적 과학기술 프로젝트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총 연구비의 5%를 인문사회분야 연구에 투입할 줄 알았던 것이다. 또한 구글이 6,000명 규모의 신규 채용 중 4,000명 내지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뽑고자 했던 것이다. 선진국다움의 창출과 구현이 국정과제인 나라에서 관리의 안목이 이보다 낮아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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