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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청년들 ‘생애 첫 바지’ 입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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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청년들 ‘생애 첫 바지’ 입게 된 사연

입력
2018.06.18 16:38
수정
2018.06.19 15: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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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선 바지가 부의 상징 로힝야족이 입으면 체포ㆍ벌금 방글라데시 난민촌서 자유 만끽
로힝야족 남성이 지난 10일 난민캠프가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서 허리에 두르는 전통의상을 입고 땅을 다듬고 있다. 콕스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로힝야족 남성이 지난 10일 난민캠프가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서 허리에 두르는 전통의상을 입고 땅을 다듬고 있다. 콕스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인 압둘 아지즈(28)는 여태껏 바지를 입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미얀마 정부의 암묵적 제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는 지난해 8월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넘어온 후 처음으로 바지를 사 입게 됐다.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아지즈를 비롯해 생애 첫 바지를 입게 된 로힝야족 청년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WP에 따르면 아지즈는 지난 주 시장에서 9달러를 주고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구매했다. 라마단(무슬림의 금식성월)이 종료되는 날 새 옷을 사 입는 전통에 따라 큰 마음을 먹고 구입한 것이다. 9달러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비정부기관이 개설한 일자리 프로그램에서 이틀을 꼬박 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액수다. 아지즈는 “반바지조차도 입어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 와서야 바지를 처음으로 입어보게 됐다”며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기분이 든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미얀마에 있을 땐 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법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지를 입으면 벌금을 매기고 체포를 한 탓에, 사롱(남녀가 허리에 두르는 민속의상) 또는 롱지(요포)를 입었다. 비공식적 복장규제가 엄연히 존재했던 셈이다.

미얀마 당국은 바지가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만큼, 로힝야족이 바지를 못 입도록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바지를 입은 영국 군인들을 미얀마 사람들은 ‘바지족’이라고 불렀는데, 잘 교육 받고 돈이 많으며 권력을 가진 존재를 뜻하는 말로 통했다. 미얀마 당국은 바지 외에도 선글라스, 휴대폰 등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를 암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로힝야족이 소지할 수 없도록 단속했다.

난민촌의 셰이예드 울 아민(15)은 WP에 “우리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며 “무슬림이 다른 이들보다 낮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불교가 주류인 미얀마에서 소수인 무슬림들은 차별과 배척의 대상이 돼 왔다.

로힝야족 청년들은 이제 그 동안 입어보지 못한 바지를 방글라데시에서 마음껏 소화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 중이다. 아지즈는 “방글라데시 남성들은 바지를 입는다. 나는 그들과 같아지고 싶다.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바지를 입는 일은 자부심으로도 귀결돼 바지를 입는 로힝야족은 더욱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이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본 같은 로힝야족의 소이예드 알롬(73) 노인은 “로힝야 남성들이 바지를 입게 된 것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일”이라며 “나도 입고 싶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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