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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아랍인 피 위에서 이뤄진 유대인의 숙원... 이스라엘 70년, 바람 잘 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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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아랍인 피 위에서 이뤄진 유대인의 숙원... 이스라엘 70년, 바람 잘 날 없다

입력
2018.05.13 13: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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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 선언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될 예루살렘 영사관을 향하는 길목에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표지판에는 이미 ‘미국 대사관’이라고 적혀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될 예루살렘 영사관을 향하는 길목에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표지판에는 이미 ‘미국 대사관’이라고 적혀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지구에서 영국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날인 1948년 5월14일, 세계 시오니즘 기구의 대표이자 팔레스타인 유대기구 수장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땅에 유대 민족 국가의 수립’을 선포했다. 서구를 중심으로 전세계 곳곳에 뻗어 나간 디아스포라의 원조, 유대 민족의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건국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아랍권과 크고 작은 분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스라엘의 뿌리가 되는 시오니즘은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19세기 말 탄생했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선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니 독립된 민족 국가를 수립해야 하고, 그 장소는 당연히 ‘약속의 땅’이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 땅을 1차대전 승전국인 영국이 패전국인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넘겨 받으면서 움직임이 구체화하기 시작했지만, 유대인들의 독립이 바로 이뤄지진 않았다. 유대인의 독립 열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박해를 받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결국 벤구리온과 이스라엘인들은 영국이 떠나는 1948년에 독립을 선언했다.

주변 아랍 국가들은 약한 신생국 이스라엘을 곱게 놔두지 않았다. 독립선언 직후 이집트ㆍ이라크ㆍ시리아ㆍ레바논 등 일대 아랍국가의 군대가 일제히 팔레스타인 땅을 침공해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총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미ㆍ영의 지원을 얻어 아랍 연합군을 물리치고 어렵사리 실질적인 의미의 독립을 쟁취했다.

이 와중에 가장 큰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땅에 이미 수백년간 살아 온 아랍인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독립 전부터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계와 아랍계의 충돌에 따른 폭력 사태가 잇따랐다. 이를 의식한 이스라엘 독립 선언서에 ‘이스라엘은 종교, 인종,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거주민들에게 사회 정치적인 권리의 평등을 보장할 것’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오랜 불신과 충돌로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수 차례 중동전쟁 끝에 아랍계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설정된 자치구역에 몰려 있지만 분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독립기념일을 유대력에 맞춰 이야르 5일에 기념한다. 그래서 세계 보편적인 현재의 태양력 체제에서는 독립기념 행사 날짜가 해마다 다르다. 올해의 경우 4월18~19일에 기념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5월14일에도 그만큼 ‘기념적’인 행사가 열린다. 이날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기독교ㆍ유대교ㆍ이슬람교 등 3개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독자 수도로 삼으려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이슬람 세계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더 큰 힘을 실어주려 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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