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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산수유 따라 봄이 왔다

입력
2018.03.27 16:2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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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물은 봄이 오길 기다리고, 봄은 꽃 소식으로 열린다. 물론 나무 한 그루에 꽃이 피었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옛사람들은 “일화불성춘(一花不成春) 만자천홍재시춘(萬紫千紅才是春)”이라 했다.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 봄이 아니라, 온갖 꽃이 다 피어야 비로소 봄이라는 말이다.

긴 겨울이 가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을 지나자 꽃들의 마라톤이 시작됐다. 매화 다음으로 앞서 꽃을 피우는 주자가 산수유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목련보다 한 걸음 빠르게 노란 꽃으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멀리서는 생강나무와 흡사하지만 조금 다가서면 생강나무와 달리 알싸한 꽃 내음이 없고, 나뭇가지가 거칠어 이내 구별할 수 있다.

‘영원불멸의 사랑’이란 꽃말처럼 산수유는 꽃과 열매 모두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 아름답고, 잎새는 여름내 보기 좋고, 껍질은 얇은 조각으로 벗겨지며 새 껍질이 생기기를 반복해 독특한 운치가 있다. 열매 또한 루비처럼 영롱한 빛이 곱다. 산수유를 의 다른 이름으로는 ‘석조’ ‘촉산조’ ‘육조’ 등이 있다. 한결같이 대추나무 ‘조(棗)’가 붙은 이름인데 열매가 대추보다는 작고 날씬하지만, 모양이 제법 닮아서일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 맺혀 10ㆍ11월 빨갛게 익는 열매는 건강식품이나 약재로 유명하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산수유 열매는 정신을 맑게 하고 각종 성인병과 부인병은 물론 두통, 이명, 야뇨증에 효능이 있다”고 썼다. 몰식자산 마릭산 주석산이 풍부해 허약한 사람이 복용하면 새 힘이 솟는 듯한 느낌을 갖기 십상이다. 특히 신장 기능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산수유 열매로 담근 술이 유명했다. 잘 익은 산수유 열매에 소주를 부어 밀봉해 두 달 뒤에 마신다. 열매는 씨를 빼고 말려서 쓴다. 전남 구례와 같은 산수유 마을 아낙네들은 열매를 입에 넣고 이로 씨를 바르는 방법으로 과육을 분리했다. 그 때문에 동네 할머니들은 이가 좋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요즘은 기계를 쓴다.

산수유는 우리나라 나무다. 1920년대에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산수유 거목 두세 그루를 발견,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자생지임을 확인했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는 수령 1,000년이 넘은 산수유 시목(始木)이 있는데, 중국 산둥성에서 시집온 여인이 가져와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국내 최대 군락지인 산동면 일원 240ha의 면적에 3만 5,000여 그루가 밀집해 자생하고, 열매의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수도권에서도 산수유 꽃을 쉽게 즐길 수 있다. 경기 이천 백사면 도립리나 송말리, 경사리 일대의 산수유 마을에는 1만 2,000여 그루가 자란다. 또 양평 산수유 마을에도 수령 20~200년의 산수유 나무 7,000여 그루가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정경을 연출한다.

꽃 피는 봄날, 수천ㆍ만 산수유 꽃이 바삐 사는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옛 말에 ‘종화일년(種花一年) 간화십일(看花十日)’, 즉 꽃 심고 가꾸기는 1년이지만 꽃 보기는 열흘이라고 했다. 봄날(春)이 가기 전에 산수유 노란 꽃을 어서 만나러 가자.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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