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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의 대법원, 靑요구에 원세훈 재판부 동향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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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의 대법원, 靑요구에 원세훈 재판부 동향 살폈다

입력
2018.01.22 15: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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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심 선고 전후 동향 법원행정처에 문의

선거법 위반 유죄에 “BH 크게 당황”

우병우 전 수석 사법부에 불만 표시

“법원 오류 검토” 등 대응 방향도 제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요구를 받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선고 전후 재판부 동향 등을 파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드러났다. 원 전 원장이 개입한 2012년 대선 댓글사건은 박근혜 정부 정통성과 직결돼 청와대는 공직선거법 위반 인정 여부에 극도로 민감했다. 법원행정처가 이를 염두에 두고 재판부 동향을 파악하려 한 것을 두고 삼권분립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판사 독립성과 재판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판사 블랙리스트(뒷조사)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2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란 문건을 공개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제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 저장매체에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 제공.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제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 저장매체에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 제공.

문제의 문건을 보면 ‘BH’(청와대) 항목에서 ‘판결 선고 전 동향’으로 ‘촉각을 곤두세움’이란 문구가 나온다. 이어 ‘BH 최대 관심현안 → 선고 전 ‘항소 기각’을 기대하면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다고 적시됐다. 법원행정처도 청와대 의중을 반영해 선고 전후 재판부와 사법부 내부동향을 파악하려 한 흔적이 발견됐다. 행정처는 판결 선고 전에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우회적ㆍ간접적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재판 결과는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렸다’고 돼 있다. 이런 내용은 그대로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민정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한다.

2015년 2월 9일 항소심이 청와대 기대와 달리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를 선고하자 BH는 ‘내부적으로 크게 당황’했다고 돼있고, ‘특히 우 전 수석은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고 했다. 이에 ‘행정처는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했다’고 적혔다. 이번 문건은 항소심 선고 다음날 작성됐다.

심각해 보이는 대목은 행정처의 ‘향후 대응방향’이다. 행정처는 상고심 쟁점을 두고 ‘사건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절대적인 핵심 쟁점일 듯’이란 문구와 함께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인) 지논ㆍ시큐리티 파일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는 너무나 구체적’이라며 ‘그런 사실관계를 단순히 전제 법리만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미 제기된 18대 대선무효확인소송 →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란 내용도 더했다. 실제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개월 뒤인 2015년 7월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원 전 원장 사건을 파기환송,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정권이 바뀐 지난해 8월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인정된 뒤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행정처는 심지어 이 사건을 두고 ‘정무적 대응 방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에는 ‘상고심 판단이 남아있고 BH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국면 → 발상을 전환하면 대법원이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수도 있음’이란 내용까지 등장한다. 이어 양 대법원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이 검토 가능하다고 적었다. 이는 국정원 댓글 사건에 민감한 청와대 입장을 이용해 대법원장 정책을 관철하려는 ‘거래’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문건은 행정처의 기획제1심의관(판사)이 사용하던 컴퓨터 저장매체의 ‘기획조정실’ 폴더에서 발견됐다. 다만, 추가조사위는 “당시 심의관은 해당 문건을 작성한 바 없고, 본 적도 없으며, 문건의 양식이 행정처가 사용하는 양식도 아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제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 저장매체에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 제공.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제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 저장매체에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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