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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새해의 ‘중용(中庸)’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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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새해의 ‘중용(中庸)’ 다짐

입력
2018.01.04 16:5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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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사회든 극단은 피하고

지성(至誠)으로 균형점 찾아 가면

삶과 역사에 후회 남지 않을 것

새해 들어 ‘중용(中庸)’을 새로 읽었다. 주자에 따르면 ‘중용’의 중은 ‘불편불의무과불급지명(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 즉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고, 용은 ‘평상(平常)’, 즉 ‘평소 늘’이다. 인식과 언행 모두 늘 치우치거나 과불급이 없는 균형 상태를 유지하라고 가르치는 책이다. 한때 동양적 관념론의 정화(精華)라는 거리낌도 있었지만, 나이 들수록 개인과 사회를 향한 실천적 가르침에 눈이 끌린다.

첫 구절인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는 ‘천명이 성(性)이고, 그에 잘 따르는 게 도(道)이며, 그것을 잘 닦는 게 교(敎)’라고 밝힌다. 인간 본성은 천명, 즉 하늘의 이치(=우주의 근본 원리)가 그대로 다운로드 된 것이니, 그 본성에 따르고, 그 본성이 녹슬지 않도록 닦고 가꾸라는 가르침이다.

다음 구절은 ‘희로애락지미발위지중, 발이개중절위지화… 치중화천지위언만물육언(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고, 드러나되 저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을 화(=조화, 균형)라 한다. 중화에 이르러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제대로 큰다’.

실천적 자성이자 자기책임의 원리다.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조화가 천지자연의 균형과 생태계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언뜻 추상적 관념론 같다. 그러나 절제되지 못한 인간 욕망의 분출이 자연과 생태계 파괴를 부르고,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불완전ㆍ불균등 충족’이 개인의 불행과 사회적 갈등의 근본 불씨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정태적 중(中)은 평화로울지는 몰라도 사회 변화나 역사 발전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변화에 상응하되 파괴와 혼란으로 흐르지 않는, 동태적 화(和)가 필요하다. 이 중과 화를 끊임없이 오가며 어느 쪽도 내려놓지 않아야 한다.

‘중용’은 이어 고정된 균형점이 아니라 그때그때 최상의 균형점을 찾는 ‘시중(時中)’, 남이 보지 않고 혼자 있을 때도 중용을 잃지 않는 ‘신독(愼獨)’, 판단과 결정에서 늘 가운데를 잡는 ‘집중(執中)’, ‘중용’의 적용 범위를 넓혀 남들과 더불어 사는 ‘충서(忠恕)’, 어떤 상황에서나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자득(自得)’ 등 실천 과제를 하나하나 밝힌다.

‘중용’의 가장 큰 가르침은 끝부분의 ‘지성(至誠)’과 ‘기천(己千)’, ‘불회(不悔)’라고 믿는다. 개인의 지극한 성실성(=至誠ㆍ지성)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라는 ‘유천하지성위능화(唯天下至誠爲能化)’, 남이 열 번 해서 이룬다면 자신은 천 번을 해서라도 이루겠다고 각오하는 ‘인십능지기천지(人十能之己千之)’, 끝까지 중용에 기대어 살다가 은둔해 세상이 몰라 보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호중용둔세불견지이불회(依乎中庸遯世不見知而不悔)’의 외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중용’을 새해의 다짐으로 삼는 것은 세상이 자꾸만 그것과 멀어지고 있어서다. 개인과 사회가 평정을 잃고 수시로 분노로 치닫거나 낙담에 빠진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숱한 격동의 나날을 보냈지만, 올해도 격동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그 속에서 국민은 자극성에 이끌려 좌우 양극단으로 몰려가고, 지식층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창간 이래 ‘치우치지 않고 떼 짓지 않는다’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사시(社是)로 삼아 온 중도신문 기자로서 ‘중용’의 가르침이 나날이 새로워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중도는 정태적 중립이 아니다. 그러니 ‘태극기’와 ‘문빠’와 같은 극단의 어느 쪽이나 그 한가운데 설 일이 없다. 대신 어느 쪽이든 역사의 큰 흐름과 동떨어진다면 망치로 내려칠 것이다. 작은 변화라도 싹수가 보이면 보듬고, 당장 커 보여도 불의하다면 두드릴 것이다. ‘좌빨’ㆍ‘기레기’ 따위 마구잡이 빈정거림에 흔들리지 않고, 지성으로 동태적 중립을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어떻게든 역사에 후회를 남기지는 않겠다는 각오 때문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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