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김영민 칼럼] 10월의 신랑 신부에게

입력
2017.10.29 14:45
30면
0 0

결혼생활에서 얼굴은 매우 중요해

피부와 얼굴빛 유지해야 미남미녀

‘공공행복’ 추구가 얼굴 빛나게 해

결혼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운 마음씨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청취해 본 결과, 고운 마음씨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말기에는 얼굴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얼굴로 인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부부싸움의 와중에서도 상대가 잘생겨 보이면 저절로 화가 누그러진다고 합니다. 화목하게 지내다가도 상대가 못생겨 보이면 저절로 화가 나서 싸우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굴이란 가정의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결혼생활을 하다가 느닷없이 배우자가 화를 내면, 십중팔구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다른 이유로 화를 내려다가도 상대가 잘생겼으면 화를 참았을 테니, 결국 배우자가 화를 내는 것은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함께 사는 상대가 못생겼으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슬퍼진다고 합니다. 반면, 배우자가 잘생겼으면 저절로 웃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밥을 먹다가 느닷없이 배우자가 오열하면, 십중팔구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다른 이유로 슬픔이 차 올랐다가도 상대가 잘 생겨 보이면 미소를 지었을 테니, 결국 배우자가 오열하는 것은 당신이 못생겨서입니다.

미남이 밥 먹여 주냐,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 라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잘 생겼으면, 자신이 기꺼이 돈을 벌어 상대의 입을 힘차게 벌리고 밥을 퍼 먹여 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 합니다.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밥상머리에서,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제발 결혼해 줘, 라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즉 결혼생활이 권태롭기는커녕 하도 짜릿해서 아직도 연애하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얼굴이 결혼생활에 이토록 중요하다면, 과연 어떻게 생겨야 잘생긴 것일까요? 얼굴의 비례나 이목구비의 배치 같은 선천적 특질에 대해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피부와 얼굴빛입니다. 피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계시겠지요. 피곤으로 피폐해진 피부 위의 이목구비란, 구겨진 도화지 위에 그린 그림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피부 관리의 비결은 무엇이냐.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충분한 영양 공급과 수면입니다. 그런데 과로하지 않으면 곧 가난의 수렁에 빠지기 십상인 이 사회에서, 좋은 영양과 충분한 수면은 소수의 특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랑 신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가난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동시에 좋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영양상태가 좋아 뽀송뽀송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하여 곧 수려한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시각적 체험에 중요한 것은 ‘빛’입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빛이 깃들게 마련이고, 그 빛이야말로 그 사람의 후천적인 얼굴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유복한 생활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법조인인 신랑 신부는 두 사람의 근로소득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사회 전체 차원에서 근로기준법 개선과 준수를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지요. 근로기준법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본인들이 잠재적인 가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순간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 사회에 기여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보기 권합니다.

결혼생활에 얼굴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른 주례들도 알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고운 마음씨만 들먹이고 얼굴에 대해서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가 못생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잘생긴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노력이 부족하여 결국 조기에 미남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그러나 신랑 신부는 앞으로도 계속 미남미녀 대열에 남아 있기를 기원하면서, 끝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생활’이라는 시를 전합니다.

기분 좋게 일을 마친 후/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차의 거품에/ 어여쁜 나의 얼굴이/ 한없이 무수히/ 비치어 있구나// 어떻게든, 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