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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서 있는 물

입력
2017.03.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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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려 마음껏 마시고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때에 나는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김동환의 시 ‘북청 물장수’를 배우면서는 아침마다 물장수가 물을 길어다 부어 준다는 것이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유럽에서는 식당에 가도 병에 든 물을 사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 불행한 땅인 것 같기도 했고,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당연한 듯 생수를 사서 그 물로 차를 끓이고 있는 시절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아니 들 수 없다. 이제 시골에는 두레박을 드리운 우물이 없어진 지 오래고 물장구치며 놀 만한 개울도, 그곳에서 벌거숭이로 뛰노는 아이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 하면 H₂O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연상하는 것이 다를 텐데, 김금래 시인은 나처럼 경험적인 사실을 떠올리지 않고 깊은 사색에 잠긴다. 그럴 때 사색의 눈에 잡히는 물은 외형적인 물이 아니다. ‘서 있는 물’, 물이 서 있다는 것은 통상적인 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봄비, 소나기, 낙숫물 등 물의 이미지는 대부분 ‘하강(下降)’과 관련되며 시냇물, 강물 등은 ‘흘러감’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 시에서 물은 “바다가 되기/싫”어서 흐르길 멈추고, “고요히//생각에 잠기”고, 종내는 “나무 속으로 들어가/팔 벌리고 서 있”는다. “세상 물들이 모두/바다로 갈 때” 그에 역행하는 물은 사실 삐딱한 물인 듯싶다. 그런데 이 물은 그냥 삐딱하게 제 성질머리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잠기는” 사색과 성찰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이 물은 ‘잎’과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겉으로 드러난 물의 존재보다 오히려 나무의 몸속에 스며들어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물을 주목하는 시안(詩眼)을 지녔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이종구 ‘시냇물’). 초등학교 때 배운, 지금도 흥얼거려지는 동요다. 이제 나는 강으로 바다로 가는 물만이 아니라 나무 속으로 들어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물도 기억하게 되었다. 봄이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하고 맞이하는, 민주주의의 봄이다. 물오르는 꽃나무들에 곧 민주 민생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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