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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대길(大吉)이 사라져도 입춘(立春)은 살아 있다

입력
2017.03.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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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은 입춘이었다. 한자 말로 ‘봄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날이 추웠던 기억이 난다. 겨울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문 파리와 비교하면 영하 5~10도의 서울 날씨는 매우 추운 편이다. 영하인데 ‘봄이 왔다’ 라는 말을 누가 믿겠나? 음력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입춘대길’을 대문에 붙이는 관습이 점점 사라질지 몰라도 ‘입춘’은 살아 남을 것 같다. 비록 추워도 ‘입춘’ 하는 순간부터 가슴과 마음이 활짝 열려 찬 공기라도 기분 좋게 들이마시며 길을 다닌다. 정말 봄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국 민족은 체력, 특히 정신력이 대단해서 그럴 법하다.

경제가 발전하여 먹고 살기가 쉬워지면서 인간이 게을러진다고 하나 한국은 예외다. 일상 생활 방식을 보면 활기가 가득하다. 눈이 와도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테니스 코트에 싸인 눈을 치우고 바로 공을 치고, 얼어붙은 잔디에서 골프도 치러 다니지만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웃으면서 활동한다. 한 겨울에도 봄날에 하듯이 양말도 신지 않고 가벼운 신발을 신고 다니는 여자들, 외투도 입지 않고 얇은 재킷만 입고 다니는 남자들이 한국에서는 많이 보인다.

찬 바람이 불어도 프랑스 사람처럼 모자를 쓰고 스카프로 입도 코도 가리면서 다니는 사람이 적다. 아주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하고, 통화도 쉽게 하면서 다닌다. 집중력이 좋아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듯싶다.

서울 사람들은 밖에서 ‘걸어 다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옷을 얇게 입을 수 있는지 몰라도 파리지엥들은 택시도 드물게 타고 주로 걷기 때문에 옷 차림과 행동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체감 온도를 비교하자면 햇빛이 많고 건조한 서울과 흐리고 습기가 많은 파리와 차이가 클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스키를 매우 즐기는 사람 외에는 겨울을 힘든 계절로 생각한다. 많은 경우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친구들을 불러서 논다. 밖으로 잘 안 나가려고 한다. 특히 파리지엥들은 영화, 전시, 연극, 연주회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실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서울은 사계절 내내 길이 붐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드물고 밖에 나가서 만난다. 한 겨울에도 포장마차를 찾기도 하고 길가 식당의 난로 옆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도 많이 보인다.

파리의 경우 따뜻한 봄이 와서 낮이 좀 길어져야 바깥에서 논다. 햇빛이 잘 드는 남향 카페 테라스가 그때는 붐빈다. 파리지엥들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카페들을 잘 알고 아침에는 단골집에 가서 에스프레소 아니면 카페 누와젯(café noisette, 우유를 조금 섞은 에스프레소) 또는 카페 크렘(café crème, 우유를 많이 섞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햇볕을 쬐고 오후에는 길 건너편 다른 카페에 가서 또 햇볕을 즐긴다.

한국 여성들은 햇빛을 피하지만 프랑스 여자들은 햇빛을 찾는다. 매일 조금씩 햇빛을 받으면 절로 비타민 D를 얻는다는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냥 기분이 좋다 하고 즐긴다. 사실 일광욕이 피부에는 나쁘다고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햇빛을 받으면 기미도 생기고 피부 색이 검어진다고 해서 그늘을 좋아한다. 물론 햇빛을 쐬려고 노력하는 한국 아줌마들을 최근에 가끔 공원에서 보지만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하는 듯 보인다. 그 즐거움 자체를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바캉스문화가 체질화 되어 있다면 한국인들은 건강지향 문화가 지배적인가 싶다. 그런데 ‘기분’과 ‘피부미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로 할까? 어렵지만 둘 다 살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도 그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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