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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조선소 일자리 잃는 5만명 대부분 비정규직”

입력
2016.05.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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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임박한 조선업 구조조정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며 비정규직도 보호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2016-05-18(한국일보)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임박한 조선업 구조조정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며 비정규직도 보호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2016-05-18(한국일보)

코앞에 닥친 조선업종 구조조정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당면 최대 과제다. 그 성패는 향후 우리가 제조업 전반에서 경쟁력을 잃고 쇠락할지, 제조업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유지해 세계 경제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회로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고비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업은 유독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 위태롭게 기업주와 정규직 만의 성장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 경제의 모순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따라서 조선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성공적으로 재교육시켜 사회에 복귀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나라 산업구조 고도화가 한층 속도를 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한국일보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서적으로 선정된 ‘노동여지도’의 저자 박점규(45)씨를 만난 건 그를 통해 조선소 생산직 노동자의 시각에서 바람직한 조선업 구조조정 방법은 무엇인지 듣기 위해서이다.

_‘노동여지도’를 읽으며 조선업계의 비정규직 비율이 상상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될 텐데.

“우리나라 12개 조선소가 가입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1990년부터 해마다 발행하는 자료집을 보면 가장 최근 통계에서 국내 최대 조선사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이 60% 이상이다. 그런데 이는 사무직, 연구직도 모두 포함한 수치다. 현장에서 선박을 만드는 기술직 노동자로 한정하면 그 비율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소의 비정규직 비율은 우리나라 산업 중에서도 가장 높다. 생산직의 70%가량이 하청이다. 그중에서도 부실이 심각한 해양플랜트 부분은 더 심각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비율이 9대1에 이른다. 정규직은 관리자 정도이고, 석유시추선을 비롯한 거대한 시설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만든다.”

_구조조정과정에서 해고될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될 것으로 보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가 자체 추산한 규모가 5만명인데, 최근 하나금융투자도 같은 수치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이미 감원된 약 1만5,000여명이 제외된 것이다. 비정규직은 해고통지를 받으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그냥 짐을 싸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1990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에서 정규직 기능직이 3만5,000여명, 사내하청이 7,000여명이었다. 24년이 흘러 2014년에 정규직은 3만5,000여명으로 변함없는 반면 사내하청은 12만7,000여명으로 늘었다. 한마디로 외환위기가 닥친 1990년대 후반 이후 20년 가까이 국내 조선산업은 비정규직만으로 성장한 셈이다. 그 결과 울산 거제는 세계 최대의 비정규직 거주지가 돼 버렸다.”

_조선 경기가 좋을 때 울산이나 거제는 이미 1인당 GDP가 1만달러가 넘으며, 강아지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했는데 실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990년대 후반까진 그랬다. 비정규직 비율이 20% 이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비정규직, 사내하청을 늘기 시작했다. 한국 조선소가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오면서 비정규직 위주의 고용구조도 배워왔다. 이것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빠르게 늘어났고 이웃에 있는 현대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고도의 손기술과 재능을 갖춘 우수한 용접공이 얼마나 되느냐와 직결되는데, 경영자들이 그런 기술자들을 정규직으로 늘리지 않고 사내하청 방식으로 확대해 온 거다.”

_그렇게 해서 조선업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기술이 우수한 거로 유명하지 않나. 배를 만드는 건 손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고도로 정밀한 굴곡을 주로 손재주와 감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조선 용접공들은 그런 걸 해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는데, 이들을 정규직을 고용해 기능을 육성하지 않고 하청 비정규직으로 방치해 왔다. 하청업체 용접공들은 일이 힘들거나 마음이 안 맞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나마 국내 조선업계 기술력이 지금까지 유지된 건 이들 하청업체 숙련 기술자들이 거제 통영 울산에서 돌고 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점차 기술력이 약화해 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공기 지연과 불량률이 높아져서 6,000억원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하청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기술력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대우조선도 해양플랜트 쪽에서 인력관리에 실패했다고 자체 분석한다. 대부분 유럽 회사들인 선주사들도 점점 공기를 제때 맞추지 못하고 불량률 늘면서 한국 조선업계에 신뢰를 잃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치고 올라오고 일본 조선업이 엔저를 이용해 부흥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 조선산업이 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_조선 업계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정규직 평균 연봉은 7,000만~8,000만원이다. 20, 30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이 많아 임금 수준도 높다. 반면 15년 경력의 사내하청 기술자의 평균 월급은 370만~380만원 정도다. 토요일 밤까지 주6일 매일 3시간씩 잔업을 하는 경우 받는 월급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거리가 줄면서 그나마 깎여 220만~230만원 정도다. 이 돈을 받고 위험한 일을 하느니 타지에 나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위기 국면이 오면 사용자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직원 임금 삭감이고 그다음이 희망퇴직이다. 사내하청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이라면 희망퇴직을 받을 때 돈을 더 받을 수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퇴직금만 받아도 다행이다. 업체를 폐업해버리면 퇴직금도 못 받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

-대량 해고 등을 눈앞에 두고 조선업 노동조합 등은 어떻게 대처하려 하나.

“조선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점이 있다. 자동차 같은 경우 사내하청 비율이 높아야 20% 정도니까 정규직 노조가 감원에 맞서 힘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조선업은 하청이 70~90%인 데다 이들을 보호할 노조도 없어 해고통고를 받으면 각자 조용히 짐을 싸게 된다. 조선소 위기가 3대 대기업으로 확대돼 이제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미 2009년부터 심각한 위기가 시작됐다. 30여 곳이 넘던 중소조선소가 이제 예닐곱 곳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대형 조선 3사 비정규직으로 옮겨 갔고, 조선 3사는 해양플랜트 분야에 이들을 집중 배치했다. 여기서 대형 손실이 나자 이제 이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나마 해양플랜트 납기가 올해 집중돼 있어 내년이면 대부분 일거리가 없어진다.”

_쌍용자동차 노동자 2,646명 해고가 이제까지 최대 해고사태였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조선업계에서는 한꺼번에 5만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그 충격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제일 우려하는 건 그나마 쌍용차는 정규직 해고여서 해고자들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었지만, 조선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노조조차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밀집된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단결하고 모이는 힘이 좋다. 반면 조선은 작업장이 커서 노동자들이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이 호황일 땐 급여만 높여주면 다른 회사로 옮겨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다 보니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힘이 약하다. 전체 조선소 중에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곳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한 군데밖에 없다. 노조라도 있으면 최소한 해고 노동자 규모라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그마저 없으니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역 노동자들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뭉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지난달에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 살리기대책모임’이 만들어졌다.”

_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향후 우리 경제 회복 시기를 얼마나 앞당기느냐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산업이 지금까지의 부실을 털고 부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대형 조선사 대주주들은 지난 10년 동안 배당금으로만 수천억원을 받았다. 호황기 회사가 벌어놓은 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회사는 모든 부실의 책임을 사내하청에게 돌리고 있다. 정부가 공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조선업계 전문가는 독일, 일본 사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고 조언한다. 일본과 독일은 조선업을 사양 산업으로 판단 포기했다. 그 기회를 우리가 잡은 것이다. 비록 비정규직, 하청이긴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수준의 숙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 숙련공들이 조선업종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조선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전문가들은 2018년부터 선박 수주가 회복할 거라 보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정규직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서라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2018년까지 버텨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대화 기구가 시급히 만들어지길 바란다. 또 조선업체들이 집중된 울산 고성 통영 거제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량 해고가 현실화하면 지역이 받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데 지자체는 지역 고용이나 일자리와 관련한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야 한다. 독일에서도 2012년 한 의료기관 파산하자 지자체가 나서서 임금을 70% 유지하며 부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부, 지자체가 힘을 모으면 된다. 이번 기회에 산업 구조조정의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정리=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박점규는

학교를 졸업한 후 노동자로 생활하다 1998년부터 민주노총에서 홍보와 투쟁을 담당했고, 2003년 금속노조로 옮겨 2011년까지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2011년 한진중공업, 2013년 현대자동차, 밀양 희망버스 등의 기획단에 참여했다. 또 2015년 현직 언론사 노동기자들과 함께 ‘굴뚝신문’을 만들었다. 지금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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