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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헌법 그리고 ‘대한민국 수립’ 원년

입력
2015.11.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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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논란되는 동안 ‘대한민국 수립’의 시기 문제가 대두되었고, 헌법 전문(前文)이 주목 받게 되었다. 1987년 10월에 개정된 현행헌법은 대한민국의 건립을 두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현행헌법의 이 같은 언급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제헌헌법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그 동안 이 헌법 전문에 따라 대한민국은 1919년 3ㆍ1 ‘독립선언’에 따라 건국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는 정식 정부를 출범시켰다는 것으로 역사를 정리하게 되었다.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 국민과 정치인이 합의한 내용이었고,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질 때 재확인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출범시킬 때, 선조들은 중앙청 축하식 연단 뒤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펼침막을 붙였고, 그 해 9월 1일 이승만 정부가 간행한 정부 관보는 ‘민국 30년 9월 1일’이라는 간기를 써 넣어 대한민국이 건국 30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는 긍지마저 표명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어 임시정부 상태를 유지하다가 1948년에 정식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국정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라는 정부 지침이 있었단다. 비록 ‘수립’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이는 ‘건국’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런 꼼수에 옹색한 변명까지 붙였다. 1948년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고 했고,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고 했으니, 국격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북의 속셈은 3ㆍ1 독립선언의 결과로 이뤄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30년 전에 건국한 대한민국이 북을 의식하여 30년 후인 1948년에 ‘수립’된 것으로 조정해야만 국격이 높아진다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요, 자기비하일 뿐이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이명박 정권이 제시한 ‘건국절’ 문제를 떠올린다. 2008년 그들은 ‘건국 60주년’이라고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했고, 광복회 및 독립운동 후예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 8ㆍ15 경축사에서도 ‘건국 67주년’이라 했고, 역사학계의 반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지침은, 뉴라이트가 주장해 온 ‘8ㆍ15=건국절’ 제정 요구와 대한민국이 임정을 정신적으로만 계승했다고 하는 주장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교육부의 ‘1948년=대한민국 수립’ 지침이 국정 교과서에 통용된다면, 또 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종래의 ‘1919년=대한민국 건국’설이 군사정권 때처럼 공공연히 훼손될 것이다. 군사정권은 1962년부터 개정한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ㆍ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만 해서, 제헌헌법 이래 명시해온 ‘1919년=대한민국 건국’설을 모호하게 했다. 군사정권은 대한민국이 3ㆍ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했다고만 했지,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서 ‘건국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무시했다. 이렇게 보면 “1948년=대한민국 수립” 지침은 군사정권의 역사 이해를 계승하려고 작심한 것이 아닐까.

또 하나 2012년 5월에 자동폐기된 ‘건국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기사회생을 노릴 수 있다. 이 법률안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고 그 3년 전부터 신탁통치 반대 등에 나섰던 이들을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로 예우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 검토 의견에는 대한민국 건국 시기에 대한 의견이 혼재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에 ‘1948년=대한민국 수립’으로 명기된다면, 이 법률안은 기지개를 펼 것이고 친일ㆍ반통일세력과의 역사 갈등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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