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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독야청청, 자칫하면 독이다

입력
2015.05.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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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송화 가루가 날리는 모습은 특별한 광경이다. 곤충을 이용한 꽃과는 달리 바람을 이용해 수분하는 풍매화인 소나무는 대량의 꽃가루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내기 때문에 바람이 강한 날에서는 아예 노란 커튼을 드리운 듯 날린다. 이맘때쯤이면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내게는 공포의 모습이지만, 소나무로서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한쪽의 눈으로만 보면 세상의 이치를 온전하게 보지 못한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다. 애국가 가사에도 나오는 나무인 것은 정중하며 엄숙하고 과묵하며 고결하며 기교가 없고, 고요하며 항상 변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잘 어울려서 우리 민족의 심성을 사로잡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나무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품위가 있다. 능(陵)의 묘원에는 반드시 소나무를 심어서 제왕의 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늘 푸른 나무이니 절개와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와 그림의 소재로 빈번히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솔잎 또한 청청하다.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마구 지껄이면 흔히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혀를 찬다. 하지만 개도 뱃속에 기생충이 있거나 병에 걸렸을 때는 풀밭에서 씀바귀라는 풀을 뜯어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는 풀을 뜯어 먹지 않는다는 게 절대 진리이거나 무조건 그렇다는 말이 틀렸다. 솔잎은 뾰족해서 소가 며칠을 굶어도 결코 입에 대지 않지만 염소는 솔잎을 좋아한다. 그건 살기 위한 진화의 결과 때문이다. 딱딱한 똥을 누는 염소는 설사가 치명적이다. 솔잎에는 타닌이 들어있어서 설사를 억제하기 때문에 염소는 솔잎을 좋아한다. 그러나 무른 똥을 싸는 소는 솔잎을 먹으면 변비에 걸리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만 일방적인 건 없다.

그런데 솔밭을 보면 다른 나무 군락과는 달리 오로지 소나무만 자라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래서 더 고고해 보이는 것일 게다. 그것은 소나무의 타감작용 때문이다. 타감작용이란 어떤 식물의 뿌리와 잎줄기에서 다른 종에 해로운 억제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말한다. 소나무가 어릴 때는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활엽수가 빨리 자라 잎으로 가리면 생존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소나무는 뿌리에서 갈로타닌이라는 독한 물질을 내뿜는다. 이 때문에 소나무 아래에서는 잔디조차 자라지 못해서 소나무가 돋보이고 고고해 보인다. 소나무가 바위틈이나 능선처럼 열악한 곳에서도 자라는 것은 볕을 많이 받기 위해 다른 나무들이 가리지 않을 조건을 찾아서 자라기 때문이다. 식물도 다 제 살 궁리가 있고, 또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공존한다.

물론 소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타감작용이 강해서 배타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많다. 소나무 밑에서는 초본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개구리나 뱀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소나무라고 무조건 다른 식물에 곁을 안 내주는 것은 아니다. 철쭉이나 참나무 등 일부 수종과는 궁합도 잘 맞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신갈나무나 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무가 소나무 조림지에서 살아남는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소나무는 햇볕을 많이 받아야 자라지만 참나무는 볕을 적게 받아도 잘 자라는데 소나무 주변에서 숨죽여 자라면서 키를 키워서 소나무보다 높게 자랐다 싶으면 가지 뻗기에 열중한다. 그래서 산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함께 자라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무조건 식물보다 더 낫다는 법은 없다. 배타적인 듯 보이는 소나무도 자세히 보면 다른 나무와 어울린다. 얼핏 보거나 들판 근처의 솔밭만 보니 그리 보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네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며 척을 지고 불신하며 악담과 저주를 주저하지 않는다. 경계를 허물고 미래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융합의 시대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에 필수다. 사람답게 살자.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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