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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직설] 분노 만드는 사회

입력
2015.04.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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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희망 있으면 참을 수 있어

분노조절 실패는 개인 문제 아니라

교육ㆍ건강 문제사회 바꾸라는 신호

최근 분노 조절에 실패한 과격한 행동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분노가 넘치고 또한 이를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을까?

분노 자체는 어떤 현상에 대한 반응이며 그것 자체가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공격성이나 적개심이 과도하여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분노가 넘쳐 자신이 그 감정에 휩쓸리면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기 쉽다. 그래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 자신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

과거와는 달리 참을 수 있는 평범한 일에도 쉽게 분노가 생긴다면 그 개인의 전반적인 감정 상태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압축적이고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고 있기에 또한 하루하루 살기에도 치열하게 힘들고 사람들 간에 경쟁적인 분위기가 심하여 이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사회적 갈등의 해결에도 너무나 소모적이고 감정적이며 의사결정 과정도 합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가능성과 희망을 선사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벅차도 희망이 보이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앞날이 불투명하다. 청년들의 분노 감정을 잠재우려면 희망이 있어야 한다. 결론은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의 분노를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노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출산율 저하로 이제 한두 명의 아이들을 낳는다. 결혼이 늦다 보니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늦게 본 내 아이에게 부모는 정성을 다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고 육아에만 전념할 수 없으니 낮에는 다른 사람이 아이를 돌보고 저녁에 들어와 아이를 만난다. 일하는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못한 일을 매섭게 꾸짖지 못하고 적당히 달래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할 때는 엄마가 없고 갑자기 밤에 나타나 자기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엄마에게 학습되며 자란다. 형제가 없다 보니 형제들 간에 서로 갈등을 해결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학교에 가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서로 어울리는 기회가 많지 않다. 수업을 마치면 학원에 가서 선행학습을 해야 하며 쉬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논다.

도대체 요즘 놀이터에서 노는 학생들을 보기가 힘들다. 친구들과 어울려 피시방에 가서 헤드폰을 끼고 게임을 하면서 채팅으로 대화를 한다. 공동체와 또래집단에서 어울리고 갈등을 겪고 이를 해결하는 인간적인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에서 예술과 스포츠를 통해 정서를 함양하고 공동체 경험을 키우려는 선진국의 노력이 부럽기만 하다. 자기 영역과 자신 밖에 모르는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들이 양산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현 상황의 불만족에 민감하게 되면 분노는 조절되지 않는다. 이들이 경험하는 큰 시련이 군복무이다.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빼앗기고 갑자기 집단생활에 편입된다. 자신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적응을 못하고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감정을 제어하고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기 쉽다. 빈번하게 군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우리 사회 분노 조절의 수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희망이다. 분노가 많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사람이 희망이 되려면 교육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분노 조절의 실패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사회구조의 결과이다. 새삼 분노 감정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꾸라는 신호인 것이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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