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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애니메이션 기반의 새해맞이

입력
2015.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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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총체적 종합예술

3대 강국 부상한 한국의 저력

창조경제ㆍ문화융성의 발판으로

내게는 새로운 예술 장르인 애니메이션을 두 차례나 우연히 만나게 됐다. 작년 마지막 날 밤, 탱고 음악을 주로 하는 고상지 밴드의 콘서트를 보고 들었다. KAIST 출신의 이 아티스트는 어렸을 적 일본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아 음악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그 유명한 에반겔리온의 OST를 반도네온으로 능숙하게 들려줬다. 묘한 에너지와 환상적인 음률로 충만한 음악은 자체로 훌륭한 독립 레퍼토리였다. 연초에 우리 학교, 한예종 애니메이션과의 졸업 작품 상영회를 참관했다. 학생 작품이라 믿기 어려운 높은 수준에 대한 칭찬은 차치하고라도 9점 작품에 담긴 다양한 풍의 그림과 심오한 스토리들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애니메이션을 ‘식객’이나 ‘겨울왕국’ 정도의 만화책이나 영화로만 여겨왔던 낡은 인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만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 그림,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 긴밀하게 얽혀진 총체적인 종합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과 위상은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해당학과의 지도교수에게 청해 들은 설명은 흥미진진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이미 세계 3대 강국 중 하나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이 극장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열었다면, ‘우주소년 아톰’으로 상징되는 일본은 TV 애니메이션을 개척했다. 여전히 두 나라는 전 세계 극장물과 TV물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대작 위주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에 강점이 있고, 일본은 시리즈 위주로 잘게 쪼갠 스토리와 캐릭터가 강점이다.

반면 후발 주자인 한국은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을 장악했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에 발표된 ‘엽기토끼’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100억 원 대의 판권을 갖고 있다. 인터넷 만화인 한국 웹툰은 세계 2위의 유통량을 자랑한다. 또한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개척해 ‘뽀로로’ ‘뿌카’와 같은 세계적 캐릭터를 만들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유아들이 핸드폰에서 접하는 최초의 애니메이션이 됐다. 그래서 미국 애니메이션을 ‘물량(大)’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섬세함(小)’으로, 한국은 ‘새로움(新)’으로 특징화할 수 있다. 기가 막힌 삼국지요, 절묘한 정족(鼎足)의 형세다.

애니메이션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3D, AR, VR, 미니어처 등 다양한 신기술로 무장한 수만 명의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단지 영상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출판, 음반, 뮤지컬, 소설, 게임, 캐릭터 산업 등 연계 산업의 분야도 무궁하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넘어 학습용, 교재용, 기업홍보용, 예술용 등 새로운 시장도 무한하다. 발상을 전환하면 ‘애니메이션 기반 교육’이나 ‘애니메이션 중심 산업 클러스터’ 등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필요한 정책도 추진함직하다. 잘하고 잠재력 있는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정책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콘텐츠다. 산업적 성공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예술적 감동과 문화적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실과 고증, 개연성 등을 따지는 다른 장르의 예술과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온갖 기발함과 환상을 생명으로 하는 장르다. 예술 애니메이션의 명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동화와 SF가 공존하고, 전쟁의 참화와 순수한 사랑이 같은 시간에 진행된다. 기계가 유기체가 되는가 하면, 소녀와 할머니가 같은 인물이기도 하는, 상상과 현실 사이에 장벽이 없다. 알사스의 작은 마을 콜마르부터 베르사이유 궁전을 거쳐 런던의 시가지까지 공간적 제약도 없다. 시공을 넘나들고, 가상과 현실이 하나로 움직인다. 게다가 이미 고전적 넘버가 된 아름다운 OST까지. 그래서 애니메이션의 지향점은 ‘만남과 섞임(合)’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 만화 그리기와 코스프레에 심취했던 딸아이를 장려하기는커녕, 은근히 금했던 것이 미안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미래의 거장이 될 가능성까지는 아니라도, 늘 상상과 실험 속에 사는 행복한 삶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새해 벽두부터 골치 아픈 일들이 수두룩한 현실을 넘어 올해는 애니메이션에 심취해볼까.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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