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전영수 칼럼] 청춘복수를 막아내는 법

입력
2014.10.07 20:00
0 0

인구감소에 따른 체제 위기

청년의 절망에서 징후 드러나

지속적 사회적 기회 제공 절실

대전환의 시대다. 체제전환이다. 최대근거는 인구변화다. ‘출산↓ㆍ고령↑’의 추세적 인구감소 때문이다. 많이 만들어 다 내다팔던 시절은 끝났다. 대신 곳곳에서 남아돌고 쌓인다. 기술혁신으로 한계비용마저 제로에 가까워졌다. 변화압박은 그간의 자본주의를 뿌리 채 뒤흔든다. ‘과잉→과소’의 시대개막은 인류탄생 이후 최초사례다. 아무도 경험 못한 미증유의 환경도래다. 가랑비라 여기며 무시할 근거는 없다. 이미 흠뻑 젖은 정황증거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인구감소로 일손부족에 허덕이는 현대일본이 대표사례다. 게임운영을 위한 새로운 생존법칙 마련이 필요하다.

인구감소와 감축성장은 불가피하다. 지체시킬 수 있으나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나마 지체시킬 의지와 여력마저 없어 안타깝다. 체제전환의 충격은 충분히 예고됐건만 당리당략과 보신주의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꺼져버린 축제불씨만 쳐다보며 여전히 왕년에 산다. 부동산과 증세처럼 기득권의 야합적인 폭탄 돌리기도 한창이다. 삼척동자도 알건만 저들만 억울해한다. 희생양은 정해졌다. 과소의 대표항목인 청년세대다. 사회발전은 지속가능성이 대전제다. 젊고 밝으며 건강한 후속세대의 지속공급이 필수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가냘픈 미래’가 ‘견고한 현재’의 볼모신세로 전락해서다.

미래가 아프다. 홀로 방치된 채 괴로움에 신음한다. 현실데뷔의 좌절과 절망이 미래희망의 방기와 포기로 연결됐다. 이젠 부모세대의 ‘평범한 삶’조차 ‘특별한 꿈’으로 격상됐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조차 힘들다. 현실의 고난을 참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지금 청년에게 이런 희망은 없다. 부모세대와 구별되는 청년집단의 희망 격차다. 기성세대는 갑갑해한다. 청춘의 특권을 잃어버렸다고 백안시한다. 청년의 꿈 상실은 맞다. 단 실종이 아니라 강탈이다. 주지 않고서 갖지 않았다고 힐책하면 곤란하다. 이들에겐 꿈을 이뤄줄 사회적 기회가 애초부터 제한적이다.

청년희망은 없다. 꿈꿀 수 있지만 이룰 수 없다. 출발선이 다른 일부를 빼면 집단피폐적인 희망증발이다. 이들이 꿈꾸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없다. 여유부릴 짬은 더더욱 없다. 아직은 현역이 많아 괜찮다지만 지금뿐이다. 인구 피라미드의 아래쪽은 급기울기의 절벽신세다. 인구추계는 무의미하다. 발표 때마다 인구변곡점은 현격히 앞당겨진다. 고령자는 ‘배차시간표’처럼 늘지만 출산율은 사실상 추정불가다. 예상을 초월하는 출산기피ㆍ포기 탓이다. 제 한 몸조차 버텨낼 수 없어서다. 청년세대는 접안이 불허되는 연안 앞바다의 난민 처지다.

청년은 착취가 아닌 공존의 존재다. 보듬어야 할 소중한 미래기둥이다. 외상장부만 건네고 입 닦아선 곤란하다. 날선 부메랑처럼 복수만 거세질 뿐이다. 출산격감이야말로 이들이 선택한 자연스런 생존전략이자 역습카드다. 바통 거부다. 삶이 힘들수록 고민과 사유의 폭과 깊이는 비례한 법이다.

해법은 있다. 힘들겠지만 장벽을 헐고 포용하겠다면 방법은 많다. 우선 인식전환이다. 청년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질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공감하자는 얘기다. ‘교육→취업→결혼→출산’의 연착륙도 급하다. 사회진입의 장벽해소다. 과소체제에 맞는 제도개혁이다. 정부와 기업의 2인3각 협조모델 구축은 현실적 과제다. 다 잃기 전에 더 얻는 길을 고민하는 게 옳다. 절망의 현실과 희망의 미래의 격차축소를 위한 구조적인 관리주체도 중요하다. 약자보호는 정부의 최소역할이다. 지금이 청년희망을 위한 대타협 타이밍이다.

고빗사위에 섰다. 암울한 환경변화는 체제전환적인 새로운 룰과 롤을 요구한다. 과거모델의 집착 대신 지속가능한 성숙모델이 필요하다. 인구감소는 화산폭발처럼 엄청난 비틀림과 뒤집힘을 동반한다. 거대변화는 가속도마저 위협적이다. ‘조만간’의 모퉁이를 돌면 곧 ‘엄청난’ 변화가 우리를 기다린다. 닥치면 속수무책이다. 우왕좌왕,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청년은 충분히 소외됐고 배제됐다. 이젠 꿈을 되돌려줄 때다. 우리의 내일은 어제와 다르다. 다만 어제는 못 바꿔도 내일은 바꿀 수 있다.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