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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특별한 한글날을 맞으며

입력
2014.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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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공간 한글박물관 개관

우리말과 글 다듬기 무리없게 하고

한글사랑에 더 많은 교육과 궁리를

이번 한글날은 특별하다. 쉬는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1946년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은 쉬는 날이 많으면 경제 발전이 저해된다는 이유로 국가 지정 공휴일에서 배제됐다가 22년 만인 지난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번 주도 연휴이지만 다음 주도 9일에 이어 금요일인 10일을 쉬면 나흘 연휴가 된다. 국민들이 한글날을 반기는 것은 역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글날은 특별하다. 국립 한글박물관이 586번째 한글날 개관하기 때문이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새로 조성된 민족의 문화공간이다. 박물관의 표제어 ‘한글을 꽃피우다’라는 말 그대로 한글을 꽃 피게 하고 열매 맺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국민 누구나 가서 보고 느껴야 할 시설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시기가 분명한 글자이며 1997년에 등록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글 자체의 매력 덕분이든 국력 신장의 결과든 아니면 순전히 한류확산 현상이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우리말의 오염과 왜곡은 거의 재난상태다. 청소년들이 한글 문법을 파괴하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들 또래로서는 당연한 문화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공공기관이나 언론기관 등이 당연한 듯 외래어 위주의 행정과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의 우리말 파괴를 조장하고 전파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립 한글박물관 보러 오실게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박물관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하는 공공시설이나 지자체가 참 많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이름은 ‘따스아리’인데, 따스하다와 메아리를 합친 말이라지만 이게 좋은 언어 창조일까?

한글날은 우리글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우리말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날이다. 말과 글을 가꾸고 꽃피게 하는 노력이 상시적으로 도처에서 전개돼야 한다. 특히 어떤 기관이나 조직이든 우두머리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그들부터 교육해야 한다. “이리 오실게요”나 “커피 나오셨어요”와 같은 말이 더 번지지 않게 하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고용주나 상사가 그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니 무슨 무슨 정책대학원, 어떤 어떤 인문학강좌든 뭐든 한글 강의를 과목에 넣도록 하자.

다음으로 우리말 다듬기 또는 우리말 바루기에서 유의할 점은 아름다운 우리의 고유어를 되살리되 전통 파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제처가 우리 법조문에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식 외래어를 정비하는 일의 경우 어느 것이 우리의 고유어인가, 어디까지 한자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을 쓸 것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납골당을 봉안당으로 고치자는 논의는 알고 보면 우리가 원래 쓰던 말로 돌아가는 일이다. 국립국어원 등 어문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 철저한 고증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말 사랑이 국수적 문화행태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한글사랑을 한자 배제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편협하며 문화발전과 전통 계승을 해치는 일이다. ‘따스아리’ 식의 억지 조어를 삼가야 한다. 웃어른이나 상사에게 여쭈는 일을 말하는 품신(稟申)이라는 단어가 요즘 잘 안 쓰이고 어렵다고 해서 배척하는 식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써오던 문화언어는 모르면 알려 해야 하지 버리려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문화파괴다. 한글은 한글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 우리의 말글살이를 살펴보면 해야 할 일이 많고 한글을 활용한 일도 많이 궁리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한글박물관이 생긴 것은 반갑고 좋은 일이다. 민간에서도 한글백화점 한글술집 한글시장 한글영화관 이런 것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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