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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작고 낮은 것이 고귀하다

입력
2014.08.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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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같았던 두 소중한 손님

작은 건축과 낮은 위로가 남긴 감동

세속을 초월한 두 거인에 존경을

연 이틀에 걸쳐 두 명의 외국 손님을 맞았다. 만나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나누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만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듯 같은 종류의 감동을 줬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분은 건축가 페터 춤토르이고, 다른 한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장애우, 새터민 등을 만났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프고 힘없는 약자들이었다. 그들의 안타깝고 절실한 형편을 개선하는데 딱히 교황이 해 준 것은 없다. 단지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기억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박한 행위가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됐고, 온갖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국민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됐다.

같은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 춤토르는 세계 건축계가 가장 존경하고 주목하는 현역 대가다. 경기도 남양성지에 작은 건축 설계를 의뢰받았는데, 현장에 가기 앞서 창덕궁 후원을 보기 원해 안내를 하게 됐다. 대단한 집중력과 통찰력으로 내 설명을 이해했고, 날카로움과 너그러움을 겸비하면서 한국의 고전을 체험했다.

춤토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외적이고 독특하다. 일흔을 넘긴 이 대가는 스위스 산골 출신으로 아직도 고국의 산골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설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과 연륜에 비해 그가 설계하고 완공한 건물들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작품들은 대부분 스위스에 산재하며, 외국이라고 해야 인접국인 독일에 세운 한두 점 정도다. 지방도시의 미술관이나 시골의 교회이니 규모도 크지 않다. 작품의 수나 규모, 활동 지역으로만 본다면 영락없는 지역 건축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모두 세계적 명작 반열에 올라 현대 건축의 순례지가 됐다.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 자본계는 그의 명성과 실력을 흠모해 거창한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했지만, 한 번도 유혹에 응한 적이 없었다. 그는 몇 개의 작업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상업적인 대형 프로젝트는 하지 않는다, 설계 기간에 속박되지 않는다, 설계금액에 구애받지 않는다… 4년 전, 국내 모 대기업도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역시 거절당했다. 당시에는 허리가 좋지 않아 장거리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다고 건강상의 이유를 댔다. 그러나 이번 역시 장시간 비행기로 이동했고, 오자마자 사찰의 선방에서 자고, 새벽같이 두시간이 넘는 고궁을 걸을 정도니 건강은 말짱했다.

그에게 거액의 설계비는 작업 이유가 되지 못했다. 독일 바겐도르프의 클라우스 경당은 시골 농부들을 위해 무료로 재능 기부한 작품이다. 열 평도 채 안 되는 이 건축을 위해 삼 년이 넘는 기간 구상에 몰두했고, 저렴한 재료들을 독창적인 기법으로 다뤄 가장 감동적인 장소를 만들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의뢰받은 천주교 경당건물도 기껏해야 20명이 들어갈 정도의 매우 작은 규모다. 주최 측 이야기로는 승낙 받는데 2년이 걸렸다니, 심사숙고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춤토르는 현대 건축은 거만하고 독선적이라 비판하면서, 일생 소박하고 본질적인 건축을 추구해 왔다. 그의 건축들은 눈에 보이는 현란한 형태를 거부하고, 흑백사진과 같은 음영과 공간의 소리와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가 말하는 좋은 건축이란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은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춤토르의 작은 건축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을 치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 사회의 낮은 곳을 쳐다보고 빈자와 약자들을 위로한다. 그 위로는 개인의, 세계의 영혼을 치유한다. 보석은 작기 때문에 빛을 발하고, 물은 낮은 곳에 머물기에 생명을 준다. 춤토르의 작고 아름다운 건축이 혼돈의 도시와 환경을 밝히는 빛이라면, 교황의 낮은 곳을 향한 고귀한 위로는 탐욕으로 황폐한 영혼을 치유하는 생명수다. 한 줄기의 아름다운 빛과 한 모금의 고귀한 생명수를 만난 이틀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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