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7.12.12 14:15
수정 : 2017.12.12 14:50

[고은경의 반려배려] ‘들개들’은 녹번동에 계속 살 수 있을까


등록 : 2017.12.12 14:15
수정 : 2017.12.12 14:50

서울 은평구 녹번동 동네 거리에 사는 개들이 주민을 반기고 있다. 허은영 씨 제공

서울 은평구 녹번동엔 ‘들개’ 여섯 마리가 산다. 이들은 동네를 배회하다가 때가 되면 주민들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돌아간다.

올 초만 해도 열한 마리가 살았는데 인근 동네 주민이 신고를 해서 다섯 마리는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약 10년 전 은평구에서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지며 사람들은 반려견을 버렸고 그 중 일부가 살아 남아 대를 이으며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남은 여섯 마리는 최소 5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 비가 오면 주차장에 들어가 쉬고, 추운 겨울엔 주민들이 쳐놓은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가끔은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를 쫓아내기도 한다.

주민들은 들개들이 유기견 보호소에 가면 대부분 안락사 되는 걸 알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잡은 들개 백열다섯 마리 가운데 절반이 넘는 육십세 마리는 안락사 됐다. 이를 막기 위해 1,900여 주민들은 들개 강제 포획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해당 구청은 일방적으로 포획하는 대신 먼저 주민들과 협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들이 언제 보호소에 잡혀갈지 추위에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빈 집에 사는 유기견 가족이 주민들이 준 사료를 먹고 있다. 카라 제공

서울 재개발 지역에 사는 들개들이 170여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을 따르는 개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개들도 있다. 공격성이 강한 개들은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이러한 피해를 막고 들개의 수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와 환경부, 동물단체가 해결 방안 찾기에 나섰다.

이들은 재개발을 앞둔 지역 반려견들을 중성화시켜, 유기되더라도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미 산이나 동네에서 살고 있는 개들이다. 서울시는 이들이 똑똑해 잡기도 어렵다는 점을 토로하며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포획 시 총포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와 동물보호단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야생화된 동물’은 야생동물 및 그 알·새끼·집에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로 지정돼 있다. 환경부는 사람들이 키우던 유실된 동물이기 때문에 야생동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야생화된 동물은 개체가 아니라 종 단위로 지정을 하기 때문에 일부는 들개, 일부는 반려동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논리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들개들의 무차별적 살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사는 유기견들이 주민들이 쳐놓은 텐트를 이용하고 있다. 허은영 씨 제공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은평구 불광동, 갈현동 등 세 재개발지역의 반려동물 현황을 직접 조사한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김성호 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녹번동의 선례를 바탕으로 백사마을에 소규모 들개 쉼터(쉘터)를 만들 예정이다. 사람들을 따르는 5~10마리는 구획을 만들어 중성화도 시키고 주민들이 돌보는 모델을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들개들과 안락사가 허용되는 보호소 유기견들과 다르게 관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구, 황구들을 무작정 포획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필요 없어졌다고 외면한 생명들에 대해 구조, 보호를 통해 최소한의 살아갈 기회를 주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고은경 동그람이 팀장 scoopkoh@naver.com

재개발을 앞두고 주인이 떠난 빈집에 개들이 묶여서 지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개만 빈집에 놔둔 채 새끼를 낳게 해 팔거나 식용으로 도축한다.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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