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7 18:22

[애니북스토리] 미투(Me Too), 동물학대, 그리고 목 비틀기


등록 : 2018.02.27 18:22

항암 치료 후 정기 검진을 받는 아빠를 모시고 자주 가는 병원의 필수 코스는 채혈실이다.

채혈실은 특성상 언제나 피를 뽑히는 순서를 알려주는 ‘딩동’ 벨소리만 들릴 뿐 적막하다. 그런데 얼마 전 채혈실에서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과 웃음소리가 섞여 시끌시끌했다.

“잠깐만요,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픽사베이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채혈이 무서워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던 여자 아이가 뱉은 말에 그곳의 환자들과 보호자, 의료진은 귀엽다며 웃었다.

나는 생각했다. 유치원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제대로 받았군. 그러면 안 되지만, 진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처럼 싫다는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그 말이 소용이 있을까,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 이가 있을까, 그런 세상일까.

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법조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사회의 어느 분야 하나 빠짐이 없다. 이런 상황을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있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악!’ 소리 날 정도로 놀라게 되지만 이번 움직임은 피해자와 피해 사례를 선정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그런 일이 가능케 하는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런 일들이 나라, 직종을 망라하고 가능했던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구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그랬다니 한국은 오죽하겠어.’, ‘저렇게 똑똑한 사람도 당하는데 약한 사람은 더하겠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결정권 없음, 성적 대상이 되며, 가족도 가장의 소유물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각종 성적 폭력은 쉽게 자행되고, 묵인되고, 비가시화 된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만나는 여성들마다 하는 말이 “강도의 차이지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있기나 해?”였다. 이게 여성들이 사는 세상이다.

동물을 향한, 자연을 향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동물의 가치를 폄하하고, 동물을 이용 가능한 사물로만 취급하게 한다. 픽사베이

미투 운동을 보면 동물학대 문제와 어찌 저리 닮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동물학대로 제대로 처벌을 받은 사례가 없다. 길고양이를 수백 마리 잡아서 죽여도, 개를 처참하게 때리고 굶겨 죽여도, 자동차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니며 끔찍하게 죽여도 수십만 원 벌금형이 대부분이었다. 동물은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 같이 동물과 자연을 향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동물의 가치를 폄하하고, 동물을 이용 가능한 사물로만 취급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동물 학대 문제가 발생해도 동물은 생명을 잃지만 가해자는 잃는 것 없이 살 수 있었다. 미투 사건의 가해자들이 수십 년 동안 별 일 없이 살았던 것과 많이 닮았다.

대한민국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세계적으로 동물학대는 근래 꽤 주목을 받고 있다. 동물학대가 인간 학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에는 동물학대와 인간학대, 특히 여성학대의 연관성에 관한 많은 연구가 소개돼 있다. 연구결과 중에는 부인에게 폭력적인 남편이 동물을 더 잔인하게 학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남성이 여성과 동물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할 때 나타나는 유사성도 밝혀냈다. 남성들은 여성과 동물을 같은 방식으로 대했는데 몇몇 남성은 폭력을 행사하면서 아내를 개의 이름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동물학대는 인간학대와 상관없이 생명에 관한 문제이고,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픽사베이

하지만 동물학대는 인간학대와 상관없이 생명에 관한 문제이고,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는 약자에 대한 폭력이 없는, 성차별, 종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1922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현 세대는 다음 세대가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목을 비틀어야만 해.’ 지금 필요한 일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다음 세대를 위한 목 비틀기.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 수는 없다.

참고도서 :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 책공장더불어, 세르주 치코티, 니콜라 게갱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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