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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를 기억하는 일본, 전쟁 반성은 없고 청년 희생만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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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를 기억하는 일본, 전쟁 반성은 없고 청년 희생만 부각

입력
2018.08.14 15:05
수정
2018.08.14 18:3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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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특공 유품관으로 조성

유서ㆍ사진 등 1만5000여점 전시

오키나와서 인양한 전투기 앞에

‘2008년 근대화 산업유산’ 표지

전쟁 참상 침묵한 채 애국심 고취

관람객들도 “헌신에 감사” 눈물

일본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시 지란평화특공회관에 전시된 제로센 전투기 일부.
일본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시 지란평화특공회관에 전시된 제로센 전투기 일부.

“지금의 일본이 존재하는 건 특공대원들의 희생 덕분입니다. 반드시 후세에 전달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일본 규슈(九州) 남부 가고시마(鹿児島)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20분을 달려 도착한 미나미규슈(南九州)시 지란(知覧) 특공평화회관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그렇게 강조했다. 가족과 함께 규슈 여행을 온 김에 들렀다는 그는 어린 손자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3월, 이 곳에는 미 군함을 상대로 가미카제(神風)라고 불린 자살공격에 나선 일본 육군 특공대원들의 비행기지가 있었다. 1941년 다치아라이(太刀洗)육군 비행학교의 지란분교로 세워졌으나 전세가 기울면서 미군이 상륙한 오키나와(沖縄)를 겨냥한 일본 본토의 최남단 특공기지로 역할이 바뀌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자살공격으로 숨진 1,036명 중 절반에 가까운 439명이 이 곳에서 출격했다는 점에서 지란은 ‘특공의 성지(聖地)’로 인식되고 있다.

1975년 지란특공유품관으로 건립된 이 곳은 1만5,000여점의 특공대원 유품을 보존하고 있다. 도쿄(東京)에서 1,700㎞ 이상 떨어진 곳이지만 개관 이후 지난해 8월까지 누적 관람객이 1,900만명을 돌파했다. 30도를 훌쩍 넘는 이날도 적지 않은 관람객들이 모여 들었다. 부모 손을 잡은 어린이부터 전쟁 이전 세대로 보이는 노인까지 전시관을 돌며 특공대원의 유품과 특공작전에 사용된 무기들을 보고 있었다. 일부 여성 관람객들은 출격 전날 특공대원들이 남긴 유서를 읽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지란특공평화공원 입구에 설치된 특공대원 조각상과 전투기.
지란특공평화공원 입구에 설치된 특공대원 조각상과 전투기.

젊은 특공대원들의 유서는 대부분 조국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는 각오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또 5명의 10대 특공대원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강아지를 안고 찍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다음날 특공작전에 나섰다니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당시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찍은 것으로, 평화회관 측 해설에 따르면 기자가 “언제 출격하느냐”고 묻자, 10대 특공대원들은 “드디어 내일 출격하게 됐다”고 씩씩하게 답했다고 한다. 내일이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수한 청년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부각하면서도, 이토록 비인간적인 자살공격을 기획하고 명령한 국가와 위정자에 대한 책임에 대한 설명은 평화회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공작전에 투입된 전투기와 소형함정 신요(震洋) 등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5월 출격했으나 엔진 고장으로 오키나와 앞바다에 추락한 뒤 인양된 일본 해군의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일명 ‘제로센(零戰)’ 잔해 앞에서 관람객들은 “스고이(대단하네)”라는 감탄을 연발했다. 처참한 모습을 한 자살공격의 상징인 제로센 앞에는 ‘2008년에 경제산업성이 선정한 근대화 산업유산’이란 표지가 붙어 있었다. 전쟁의 참상보다 당시 자국의 항공기술 발전을 알리려는 듯 보였다. 더욱이 전쟁 초기 제로센의 활약상을 설명하며 연합군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설명은 과연 이 공간이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나가사키(長崎) 군함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역사를 외면한 채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란특공평화회관 마당에 세워져 있는 조선인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넋을 기린 아리랑 진혼가비.
지란특공평화회관 마당에 세워져 있는 조선인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넋을 기린 아리랑 진혼가비.

지란평화회관 마당 한 구석에는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ㆍ한국명 탁경현) 소위 등 조선인 출신 특공대원 11명의 넋을 기린 ‘아리랑 진혼가비’가 세워져 있다. 탁경현의 사연은 2001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 ‘호타루(반딧불)’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져 있다. 그는 출격 전날인 1945년 5월10일 기지 인근의 도미야(富屋) 식당에 들러 ‘특공대원의 엄마’로 불린 주인 도리하마 도메(鳥浜トメ)에게 조선 출신임을 밝히고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렀다. 일본에선 특공대원의 사연들이 ‘영원의 제로’,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 등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일제를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하는 식민지의 모순된 현실을 상징하는 탁경현의 죽음도 특공대원들의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연 중 하나일 뿐이다.

‘호타루’의 배경이 된 도리하마의 식당은 현재 그의 손자가 특공대원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유품을 모아 ‘호타루관’이란 이름의 사설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의 방명록에도 “전쟁이 두 번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특공대원들의 헌신에 감사하며 나도 지금부터 정진하겠다” 등의 소감들이 적혀 있었다.

일본제국주의가 몰락한 뒤 73년이 지났지만 지란에서 기억되는 특공대원들은 ‘조국 수호를 위한 안타까운 헌신’의 이미지로 집약되고 있을 뿐이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공감을 자아내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전달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면 일제가 전쟁을 일으킨 근본 원인과 청년들의 목숨을 폭탄유도장치로 소모해 버린 특공작전의 의미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때문에 보편적인 세계평화와는 거리가 먼, 자국민을 대상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현장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나미규슈=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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