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기자

등록 : 2018.03.12 04:40

아들이 “왜 살려냈냐” 울부짖을 때,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등록 : 2018.03.12 04:40

‘철인’ 신의현을 만든 8할은 가족, 메달보다 빛난 도전 정신

신의현이 11일 강원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좌식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피니시라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평창 동계패럴림픽 한국의 첫 메달이자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세 번째 메달의 쾌거를 쓴 신의현(37ㆍ창성건설). 경기 뒤 그의 얼굴에는 메달의 환호와 함께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신의현은 11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15km 좌식에서 42분 28초 9를 기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은 41분 37초 0의 우크라이나 막심 야로프이(29)가 차지했다. 한국은 이전 동계패럴림픽에서는 은메달(2002 솔트레이스크시티 알파인스키 남자 좌식 한상민, 2010 밴쿠버 휠체어컬링)만 두 개였다.

신의현은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초반에 체력을 비축하고 후반에 승부를 보려고 했다.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을 들으며 온 힘을 쏟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전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남자 7.5km 좌식에서는 사격에서 실수를 해 5위를 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터라 속상해서 경기 뒤 부모님과 만나 눈물을 흘렸던 신의현은 “오늘은 안 운다. 어제는 눈물이 아니라 땀이었다”고 농담하는 여유도 보였다.

동메달을 따낸 뒤 관중 환호에 답하는 신의현(오른쪽). 가운데는 금메달리스트 우크라이나 막심 야로프이, 왼쪽은 은메달리스트 미국의 다니엘 크로센. 평창=연합뉴스

이번 결과물이 값진 건 메달 때문만이 아니다. 두 다리를 잃고도 여기까지 온 도전 정신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신의현은 충남 공주 정안면에서 부모의 밤 농사를 돕던 건강한 청년이었다. 2006년 2월 운전 중 마주 오던 차와 정면충돌했고, 7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양쪽 무릎 아래를 잘라냈다. 어렵게 생명을 건졌지만 3년 동안 방에만 틀어박혔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어머니 이회갑 씨와 아내 김희선 씨였다. 사고 직후 의식이 없던 신의현을 대신해 아들의 하지 절단 동의서에 이름을 적은 사람이 바로 어머니 이씨다. 의식을 찾은 그가 사라진 다리를 보며 왜 살려냈느냐고 울부짖었을 때도 이 씨는 울음을 꾹 참은 채 다리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아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지금의 신의현을 만든 가족들. 왼쪽부터 아내 김희선 씨, 아들 병철 군, 아버지 신만균 씨, 어머니 이회갑 씨, 딸 은겸 양.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신의현은 재활 차원에서 시작한 휠체어 농구를 통해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됐고 장애인 아이스하키, 휠체어 사이클을 섭렵했다. 2015년에 민간기업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인 창성건설 노르딕스키 팀에 합류한 뒤 1년 만에 세계정상급 선수로 성장했고 패럴림픽 메달까지 거머쥐었다.

전날 바이애슬론에서 5위를 한 아들이 울자 “울긴 왜 울어. 잘했다. 잘했다”며 안아줬던 어머니 이 씨는 “너무 자랑스럽다. 메달을 떠나 우리 아들 고생한 게 너무 고맙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근 눈이 잘 보이지 않아 가슴으로 아들을 응원한 아버지 신만균 씨도 “어렸을 때부터 끈기가 대단했던 의현이가 장한 일을 해냈다”며 흐뭇해했다. 신의현의 딸 은겸 양은 “아빠 짱”, 아들 병철 군은 “우리 아빠 신의현 선수 파이팅”을 외쳤다. 아내 김희선 씨는 “아이들이 다니는 공주 정안초등학교 전교생이 80여명 된다. 아이 아빠가 메달을 따면 전교생에게 아이스크림을 낸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킬 생각”이라고 기뻐했다.

13일 바이애슬론 남자 12.km 좌식 경기에서 다시 한 번 메달 사냥에 나서는 신의현은 “꼭 금메달을 딴 뒤 눈밭에 태극기를 꽂고 함성을 지르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가 입상하면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가 된다. 어머니 이 씨는 ”어제는 5등, 오늘은 3등이니 1등만 남았다. 외국 대회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고 거들었다.

신의현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나도 도전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많은 장애인 분들도 각자 도전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창=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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