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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본 대 아시아

입력
2016.04.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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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면서 마주치는 화두 중 하나는 일본을 아시아로 간주해야 할지 여부이다. 지리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아시아에 속하는 일본을 두고 무슨 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일본 스스로도 그다지 속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 묵은 질문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말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아시아와 맞서며 일원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생각하는 아시아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그리는 아시아는 다르기 일쑤였고, 이 간극은 요즘 점점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지금도 다방면에서 아시아에서 선두를 달리는 일본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과거 일본은 힘으로 한반도를 제압한 후 제멋대로 아시아를 구성하려 했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다. 그 저변에 자리잡은 일본식 ‘아시아주의’는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가 논파했듯이 침략을 가장한 연대에 다름 아니었다. 일본은 아시아를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지켜준다는 자기만의 논리로 아시아 곳곳을 침략했고, 나중에는 이를 ‘진출’이라고 주장했다.

잠시나마 ‘아시아의 제국’을 구가했던 일본은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에 패하자 일순간에 섬나라로 쪼그라들었다. 스스로 전쟁을 포기한 헌법 ‘9조’는 ‘패전국’ 일본이 어떻게든 다시 아시아로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평화국가’일본의 본질은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에 편승하면서 다시 아시아와 맞서는 것이었다. 이웃 한반도가 갈라져 전쟁에 휩싸였지만 ‘기지국가’ 일본은 냉전이 빚어내는 수혜를 따먹었다.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거꾸로 피해자 의식에 빠져들었다.

일본은 미국에 졌지 아시아엔 결코 패하지 않았다. 일본이 아시아에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청산한다면서 내놓은 논리는 배상이 아니라 ‘투자’였다. 아시아 각국은 이런 일본의 아시아 재진출을 ‘신(新)식민지주의’라고 수군댔지만 일본은 가난한 아시아를 도와주는 ‘착한’ 나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과거 일제가 아시아를 제멋대로 재단했듯이 전후 일본도 아시아라는 지역 개념에 인도와 태평양을 붙였다 떼며 자기만의 아시아상(像)을 그렸다.

일부 일본의 정치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아시아 외교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말한다. 1980년대 말 일본이 미국에 견줄 정도로 강한 경제를 일궜을 때 대미 추종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아시아로 되돌아와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이는 변명처럼 들린다. 탈아(脫亞)와 입아(入亞) 사이를 오가면서 아시아에 대한 연대와 멸시 의식을 동시에 분출해온 일본의 이중적 모습은 그 뿌리가 훨씬 깊기 때문이다.

냉전이 무너지고 공통의 적이 사라졌지만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면서 미일동맹을 강화했고 결국 다시 아시아와 맞선 것이다. 이런 추세는 아베 신조 정권 등장 이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 속의 일본’을 말하지만 ‘일본 대 아시아’라는 대결구도를 벗어던질 생각이 없다. 이런 집단적 비(非)아시아 인식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다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을 어떻게 맞아야 하나.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데다 미국이라는 공통의 친구와 북한이라는 공통의 적을 갖는 한국이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말한다. 일면 옳다. 하지만 일본이 가상의 적국으로 생각하는 중국이나 북한이 우리에게도 같은 무게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아시아를 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위안부 문제를 묻어버린 한국 정부가 군사적으로 다시 일어서는 일본과 어색하게 악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필자뿐일까.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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