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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설 연휴 흥행몰이

입력
2016.02.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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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 쇼박스 제공
영화 '검사외전'. 쇼박스 제공

전도유망한 한 남자가 살인 누명을 쓴다. 교도소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건 악질 수감자들의 폭력이다. 멍든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남자는 탈출구를 모색한다. 사회에서 습득한 전문지식으로 교도소장과 교도관을 꾄다. 세금을 줄이는 수법, 임대보증금을 떼이지 않는 방법 등 여러 경제적 도움을 안겨주니 교도소장 등의 마음이 열릴 수밖에. 남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갖은 혜택을 교도소 동료들과 함께 나눈다. 교도관들의 경계는 느슨해지고, 수감자들은 기꺼이 남자의 편이 된다. 남자는 이를 탈출에 십분 활용한다.

어느 영화의 줄거리일까. 40대 이상의 영화 팬들이라면 팀 로빈스 주연의 ‘쇼생크 탈출’(1994)을 정답으로 들 것이다. 하지만 설 연휴 극장가를 찾은 관객 대부분은 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을 답으로 외칠 만하다. 옛 영화에서 착안한 충무로 영화들이 요즘 많다고 하나 ‘검사외전’은 이례적이다. 마치 새롭게 만들어낸 기가 막힌 설정이라도 되는 듯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을 할애해 ‘쇼생크 탈출’의 핵심 줄기를 재활용한다.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도 눈에 익다. 잘생긴 외모의 타고난 사기꾼 치원(강동원)은 신출귀몰의 행각을 보여준다. 신분증을 뚝딱 만들어내고,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라는 거짓말에도 다들 속아 넘어간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익숙한 설정들이 이 영화의 진짜 흠이 아니다. 다른 영화들에서 빌려온 설정만 있고 섬세한 묘사는 없다. 사연과 인물 소개가 얼렁뚱땅 서술에 의지해 넘어간다. 9일까지 544만 관객을 모으며 설 연휴 극장가를 호령하는 영화라고 하기엔 완성도가 떨어진다. 완성도와 흥행 수치는 정비례하지 않음을 ‘검사외전’이 새삼 실감케 한다.

‘검사외전’의 특급 흥행이 스크린 독과점의 결과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9일에만 전국1,806개 스크린에서 ‘검사외전’을 1회 이상 상영했다. 전체 스크린 수가 지난해 기준 2,424개이니 ‘검사외전’을 건 스크린이 75%에 달한 것이다. 역대 최고 흥행영화 ‘명량’의 상영 스크린 수 최대치가 1,586개였다.

스크린 독차지는 ‘검사외전’의 잘못이 아니다. 지난달 극장가 관객은 썰물이었다. 1,690만6,401명이 극장을 찾았다. 1월 관객이 2,000만명을 넘지 못하기는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설 연휴를 겨냥해 지난달 개봉한 ‘오빠생각’과 ‘로봇, 소리’는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극장들이 흥행 유망주 ‘검사외전’에만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해도 비정상적 상황인 건 맞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페이스북에 ‘미쳤다’는 표현을 쓰며 극장가의 현실을 일갈했다. 언제까지 극장가를 수요공급 원칙에만 내맡길 것인가.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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