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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안의 100조마리 미생물은 건강 동반자

입력
2016.03.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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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 인간

앨러나 콜렌 지음ㆍ조은영 옮김

시공사 발행ㆍ480쪽ㆍ2만2,000원

20대에 나는 심한 결핵에 걸렸었다. 1년 가까이 매일 20개 정도의 독한 결핵약을 먹고서야 겨우 완치할 수 있었다. 결핵균은 퇴치되었지만, 덩달아 장내 미생물의 균형도 파괴되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나는 장속 미생물에 대해 늘 궁금했었는데 우리 몸의 미생물에 관해 앨러나 콜렌이 쓴 ‘10% Human-10퍼센트 인간’이라는 책은 무척 반가웠다.

서문을 읽어보니 저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22살에 말레이 반도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박쥐를 연구하느라 3개월을 지내던 저자는 살인진드기에 의해 열대 풍토병에 감염이 되었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엄청난 양의 항생제가 투여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풍토병은 고쳤지만, 피부가 예민해진다든지, 장에 탈이 난다든지, 면역력이 떨어지는 등의 새로운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 때 사람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인간의 수명과 건강에 대해 무한대의 상상을 펼쳤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면 정상 유전자와 질병 유발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확보되어 인간의 생로병사의 비밀이 밝혀지고 난치병들을 퇴치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이 날개를 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결과는 어떠한가? 예상보다 유전적으로 조절되는 질환은 많지 않았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백신과 예방접종, 깨끗한 병원과 식수 관리, 항생제(페니실린) 발견 등 의학기술의 혁신과 공중보건 조치가 인간 수명의 연장에 기여한 정도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첨단과학, 특히 생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로운 질병과 증세에 대해 속수무책인 듯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음이 틀림없다.

오래 사는 것만이 건강의 척도일 리 없다. 웰빙이나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이와 어른 모두를 괴롭히는 질병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 같다. “자폐증이라는 자아의 틀에 갇혀버린 아이들, 아토피나 꽃가루 알레르기, 음식 알레르기, 천식으로 고통받는 수백만의 어린아이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들을 10대 아이들, 신경계가 파괴되어 버린 청년들, 과체중인 많은 어른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저자가 든 사례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삶은 가혹하다. 장수가 축복이던 세상에서 건강하게 늙는 것이 모두의 관심이다.

‘21세기형 질병’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놀랍고 대담한 가설을 제시한다.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한 장내 미생물 균형 파괴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몸이 2만 1000개의 유전자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미생물총(微生物叢)이라 불리는 100조 마리의 체내 미생물을 거느린 슈퍼생물체(superorganism)라고 주장한다.

미생물총은 박테리아 말고도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균류 원시세균을 포함하는데 이 미생물총의 유전자들이 2만1,000개의 인간 유전자와 더불어 우리 몸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에게 만연해 있는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등을 비롯해 자폐증, 위장장애, 강박 장애, 불안 장애, 우울증, 비만 등이 미생물총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체내 미생물군을, 유전으로 인한 선천적 소인과 생활습관이라는 후천적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제3의 존재’로 부각시키며, 현대인의 질병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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