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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생존과 분리된 ‘일’을 상상한다

입력
2018.07.11 19:30
수정
2018.07.12 09:4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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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1년 동안 계약기간 지나고 그때 소정의 심사로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인데 그런 와중에 저는 못하겠다, 안 하겠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교육생 시절 한 달에 한번 방문하는 ‘회장님’을 환영하기 위해 다같이 "회장님 사랑해요"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은 "왜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댓글창에 이렇게 쓴다. "이런 회사 왜 다니냐? 불만 있으면 때려치든가."

정말? 요즘 세상에 어떤 회사를 가거나 관두는 게 100% '개인의 선택'이라고?

물론 어떤 학자들은 노동자들도 고등교육을 받고 자기계발을 해 가치를 높이면(시쳇말로 ‘노오력’하면) ‘노동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고 좋은 일자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직장을 고를 자유'란 세상에 일자리가 넘쳐 흐를 때나 주어지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자동화로 사람 쓰겠다는 수요는 급감했는데 공급은 전세계에서 차고 넘친다. 아무리 자기계발을 한들 훨씬 우수한 기계와 로봇에 밀리면 한순간에 밀려난다. 인간노동의 가치는 한없이 낮아지고 있다. 자본가가 자동화에 투자하는 것보다 아직 사람을 투입하는 게 싸다고 판단할 때만 사람에게 일자리가 돌아간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전철 무인운행 같은 사례처럼 지금도 수천개의 일자리가 자동화 투자 한번에 사라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와 선박이 보급되면 운수ㆍ물류업에선 상상을 초월한 규모의 실업이 발생할 것이다. 인건비가 낮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은 열악한 노동현실이 외신에 보도되자 2011년부터 산업용로봇 개발에 투자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노동자를 재교육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시키자는 대안도 나오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속도보다 없어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더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인간이 기계 대신 위험한 일을 기꺼이 할 테니 제발 일자리만 줄이지 말아달라고 시대 역행하는 정책을 펴는 것도 올바른 답은 아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100년 뒤에는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주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한정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조차 일각에선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현재 한국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예언이다. 그러나 그렇게 극단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자리를 나눠 총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개개인의 소득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이제 ‘일’과 ‘생존’을 분리해 상상해 보면 어떨까. 교육ㆍ의료는 국가가 담당하고 최소생계비는 ‘기본소득’으로 주어지며 일을 통해서는 추가 소득을 얻는 식이다. 사람은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 가족, 공동체와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고용불안에 떨며 ‘회장님 사랑해요’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

물론 기존 사회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수준의 혁명적 변화에 사회구성원이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유토피아적 상상,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반기업적 발상이라며 외면하는 동안 이미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논의가 늦으면 늦을수록, 아무런 대책 없이 실업 상태에 내동댕이쳐지는 사람이 늘어난다.

대규모 실업은 자칫 파시즘이나 전쟁의 불쏘시개로 작용할지 모른다. 중간층의 박탈감을 소수자, 이민자 등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돌리는 경향은 이미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징후가 보인다. 약자를 공격한다고 일자리가 돌아오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근본 문제의 해결책보다는 주변의 만만한 상대를 찾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전에 일과 생존을 분리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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