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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보험료 폭탄’ 괴담 퍼뜨리는 정부

입력
2015.05.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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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가정 총동원해 사실 왜곡

靑, 김무성 문재인 견제 의도 있나

보험료 인상 다음 정권에 떠넘겨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5월 국회의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 등 정국현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5월 국회의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 등 정국현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연금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 보험료 폭탄 괴담이다. 왜 괴담이냐 하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장은 크다. “연금을 못 받을지 모른다”“기금이 고갈된다”는 등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심지어 연금 폐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부메랑은 고스란히 정부에 돌아오게 돼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야 연금협상이 타결되자 ‘보험료 2배’를 들고 나왔다. 타협안대로 하면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가 2배로 오를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를 쏙 빼놓았다. 소득대체율만이 아니라 연금기금 유지라는 변수를 함께 고려한 수치라는 것을. 그것도 앞으로 85년 후인 2100년을 가정해서다. 정작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는 3%포인트 남짓 인상될 뿐이다. 이를 두 배로 뻥튀기했다. 그러려다 보니 한 세대도 아니고 세 새대나 후의 일을 현재와 연관지었다. 소득대체율과 무관하게 어차피 보험료는 크게 오르게 돼있다는 얘기도 숨겼다. 현재 쌓아놓은 수백 조원의 기금을 2060년이든, 2100년이든 유지하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한 술 더 떴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려면 향후 65년 간 1,702조원의 세금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얼토당토않다. 1,702조는 소득대체율을 높였을 때 가입자가 받게 될 연금수령액을 모든 합친 액수다. 바꿔 말하면 재원규모를 말한다. 하지만 재원은 세금이 아니라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충당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보험료로 운영되지 세금이나 국가 재정이 지원되지 않는다. 내가 낸 보험료가 훨씬 많은 연금으로 돌아오는데 이게 왜 세금이라는 건지 황당하다. 이런 논리라면 은행 예금도 세금으로 충당된다고 해야 옳다. 더구나 이 계산법은 연금 기금이 전액 소진됐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청와대 주장이 맞다면 이런 상황이 돼야 한다. 보험료는 향후 65년 동안 한 푼도 안 올리고 연금기금은 모두 사라졌고(그게 왜 없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입자에게 줄 연금을 전액 세금으로 투입하는 상황이다. 전혀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는 극단적 가정을 총동원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토록 터무니 없는 괴담을 흘리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소득대체율 상승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확대하고 왜곡까지 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행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 여야 지도부에 정국운영의 무게추가 옮겨가는 것을 꺼려서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보궐선거 승리에 핵심 국정과제 해결로 승승장구하는 김무성과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문재인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본다면 지나친 정치공학적 해석인가.

문 장관은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연금학자다. 2013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지속을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솔직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미리 총대를 멘 것인가.

정부는 재작년 출범 초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추진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보류한 바 있다. 정부가 그토록 애지중지한 기금은 점차 고갈되고 있다. 몇 년 안에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기금재정은 더욱 악화된다. 그런데 이제 보험료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미래세대의 현 세대 부양이라는 연금의 기본 전제까지 팽개치며 ‘세대간 도적질’로 규정했으니 뭐라고 할 것인가. 제 발등을 단단히 찍은 셈이다.

2004년 국민연금에 대한 잘못된 괴담의 파장은 엄청났다. 대대적인 국민연금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탈퇴자가 속출했다. 혼란과 오해를 바로잡는 데 여러 해가 결렸다. 현 정권은 임기 내 국민연금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 다음 정권에 넘기려 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치권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정부의 행태야말로 진짜 포퓰리즘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큰 실수를 했다.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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